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ssoud Jun Jun 03. 2020

프랑스 식민지 4, 호텔 엠봉고

감리 에바



 잠결에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아몰랑이 앞에 서 있었다. 바로 옆방이지만 왕래가 거의 없었고 현장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사무실에서 엉뚱한 행정을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문을 두드린 아몰랑이 반가웠다.


“무슨 일이야 일요일인데?”


 베개에 머리를 묻고 비몽사몽간에 물었다.


“아, 아니, 아침부터 물이 안 나와서. 여기도 안 나와?”


“빌어먹을! 너 죽을래?”


아몰랑이 휘리릭 자리를 떴다. 9시였다.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달아난 탓에 찝찝한 몸을 씻으려 욕실 물을 틀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잠이 덜 깬 눈으로 탁자 위를 바라보자 위에 놓아두었던 물건이 없어진 걸 발견했다. 썬 크림과 애지중지하는 모기약이 각 10개씩 들어있던 비닐 팩에 딱 반씩 없어졌던 것이다. 매춘을 요구했던 그 여자는 침실 청소도 담당했고 담벼락 연인인 남자가 방을 청소했기 때문에 용의 선상에 올랐다. 


 산발 머리를 하고 아몰랑과 함께 긴 복도를 따라 광합성을 하러 호텔 밖으로 나갔다. 로비엔 아침부터 호텔 가족들이 소파에 드러누워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고 각종 술을 파는 바가 카운터 뒤편으로 있었지만 술도 커피도 제공되지 않았다. 조용한 아침의 평화로운 일상이 저마다 편하게 널브러져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문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어둠이 가득한 호텔 로비를 점점 잠식했다. 티브이 소리가 없고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어둠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발견하기 힘들었다.


 흐드러지게 늦잠을 잔 일요일 아침의 햇빛은 눈부시게 찬란했다. 마치 겨울잠을 푹 자고 나온 것 마냥 기지개를 켰다. 해뜨기 전부터 일과에 매달리다 언제 해가 떴는지 모르게 햇빛에 익숙해져 가는 일상에서는 알 수 없는 짜릿한 여유가 기지개를 통해 현기증을 느꼈다. 호텔 밖의 벤치엔 에바가 나와 러닝 차림으로 지지리 궁상을 떨며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헤이, 빙 레임스! 웬 청승이야?”


“빙 레임스가 누구야?”


에바가 눈을 돌려 악수하며 물었다.


“아니, 한 번도 안 들어봤어?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너와 정말 많이 닮은 미국의 영화배우인데?”


 효준이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보여주자 그제야 무릎을 쳤다.


“이 배우와 내가 닮았다고?”


“그럼! 체격이랑 인상이 비슷해. 이 친구 매력적이지! 너도 그렇고!”


“내가 매력적이라고?”


“그럼! 넌 매력적이야! 너 찾는 아가씨들도 많더만!”


“그 아가씨 어딨어?”


 효준이 호텔에 들어오기 전 바에서 술을 마실 때면 에바의 거처를 묻는 여자가 있었다. 호텔에 있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물론, 호텔에 문신을 많이 한, 매춘을 요구하던 이상한 어투의 여자도 에바를 찾긴 했었다. 가봉 여자들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수한 의미로써 생김새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건 확실했다. 


 효준에게도 이유와 명분을 알 수 없는 여자들이 연락처를 남겨두고 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여자들은 애교를 부리지 않는데도 귀여운 교태 속에 순박함이 묻어났기 때문의 경계를 갖지 않고 마음을 열기가 쉬웠다. 


호텔 앞 거리, 한 낮의 태양 아래 나무 그늘 속 모습이 평화롭다.



 각박한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한국에는 모르는 사람들 과의 접촉이 두렵고, 대화 나누기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었으므로, 자유의 나라 프랑스는 프렌치들 뿐만 아니라 여행이나 유학 온 외국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마력을 가진 나라였다. 그곳에서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은 마음을 무장해제시킬 정도로, 그 미소와 다가섬이 매력적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나쁜 흑인을 만나기 힘들었다. 다들 손버릇이 나쁠 뿐, 흑인들을 욕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프랑스 사회와 문화에 동화된 그들은 이방인이긴 했어도 친근한 이웃이자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를 떠나 아프리카 본토에서 만나는 아프리카 인들의 뻔히 눈에 보이는 거짓말과 도둑질에 주의해야 했다. 그런데 이곳엔 돈이나 먹을 것을 달라고 했으므로 프랑스에서 만났던 아프리카에 대한 매력은 처절하게 배신당했다.


 효준은 그동안 인지하고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리했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돈이나 먹을 것을 요구하고, 만약 같이 일을 한다면 도둑질과 거짓말을 주의해야 한다는 그들에 대한 인식은 아프리카 멘탈로 바뀌어서, 그들과 대화하지 말라고 했던 외인부대 안드레아 상사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이 곳이 자신들의 본토였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마치 국가 전체에 흐르는 멘탈과 시스템처럼 인식하고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 상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격표가 붙여진 큰 슈퍼마켓은 물론, 조그만 상점들, 식당들도 터무니없이 바가지요금을 씌우거나 강매를 요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같이 일하게 되면서 바뀌는 그들의 우월의식이 가봉 시스템을 타고 현장을 지배하는 현상은 마치, ‘우리가 남이가?’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그래서 가봉 국은 단결, 노동과 정의를 모토로 삼고 있었지만 정의와 단결은 노동 현장에서는 상충했다. 노동을 하면서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고 단결함으로써 정의를 욕보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에바는 하얀색 내복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람처럼 연기를 들이마시고 후 내뱉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 고독과 함께 홀아비처럼 떠는 청승이 귀여웠다. 군인 하사 출신인 에바의 아내가 휴가 와서 같이 보내고 갔지만 소개를 시키지 않았던 것을 문제 삼자 다음 기회에 소개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차드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기 여자들도 할례 의식 해?”


“아니? 중앙아프리카 쪽으로 들어가야 하지. 여긴 종교의 자유도 있고 여성의 인권도 있어”


“그런데 왜, 여자들이 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자들이 다 떠나버려?”


“글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현상이라고 할까? 그걸 어떻게 알아?”


“주변에 보니, 혼자 사는 여자들이 대부분 아이들을 양육하더라고, 어제 너희들 술 마셨던 그 바의 주인도 그렇고! 여자들이 참 매력적이야, 그런데 일찍 만나 아이만 낳으면 남자들이 떠나버리나 봐.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돼!”


“여긴 국경이라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편인데, 여러 국가에서 많이 와. 가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 어울리기에 어색함이 없어. 그리고 조혼 풍습이 있어서 일찍 연애하는 것도 여기선 흔해. 아이들 부양을 여자들이 대부분 하니까 남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그러니 혼자인 것처럼 보일 뿐이지만 어떻게 살든 자유지!”


“그렇게 보면 한국 사람들이 참 각박하게 살아. 즐길 줄 모르고 가족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거든!”


 둘이 대화를 즐기는 사이, 호텔 사장이 나타났다. 호텔에서 없어진 물건과 월요일에 요청한 테이블과 의자에 대한 클레임을 걸었다. 이 부장은 새벽에 사장을 불러 에어컨 청소까지 시키고서야 잠을 청했을 정도로 깔끔을 떨었지만 그에 비하면 나의 요구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전구 교체가 다였음에도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젊고 잘 생긴 호텔 사장은 교체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없다고 했다. 없어진 물건에 대해선 사과와 더불어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가봉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라 제 자리에 돌려놓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식민지 3, 프랑스인 감리 대장 조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