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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Nov 22. 2017

02 [수업中] 페미니즘 in 시카고 대학

8주 차 [정치사상방법론] 수업의 내용은 페미니즘, 그중에서도 페미니즘 그 자체보다는 정치사상 방법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Not feminism per se but feminism as an interpretive methodology in political theory."




수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수업의 구조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수업은 Interpretive Methods in Political Theory[정치사상방법론]라는 수업으로 정치사상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들을 배우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MAPSS 프로그램 안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석사생들을 위한 수업이다. 매주 2회 수업이 진행되는데 15~20명 정도의 학생들이 강의실에 둘러앉아 각 시간마다 지정된 리딩을 기반으로 1시간 30분 정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좀 더 이쁘게 얼굴을 가렸어야 했는데 포토샵을 잘 못해서... 죄송하다.

한 학기 동안 총 8명의 학자들을 공부하며 그들로부터 파생되는 8개의 방법론을 공부한다. 매 수업마다 보통 책 한 권 정도 분량의 리딩을 놓고 토론하고 한 학기 동안 두 번의 짧은 페이퍼, 한 번의 긴 페이퍼를 과제로 제출해야 한다. 교수는 주로 중재자 역할과 필요한 보충 설명을 해주는 역할을 하며 거의 모든 시간은 학생들이 서로 주고받는 토론으로 보낸다. 가끔 토론이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지만 이 교수는 웬만하면 토론을 중단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밖에 없다 보니 한 번 토론이 삼천포로 빠지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못 얻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책들을 읽는 것 자체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






Kemp & Squires, Feminisms (1998)

아무튼, 이번 주 주제는 페미니즘이었다. Sandra Kemp와 Judith Squires가 쓴 Feminisms라는 책을 읽어 가는 게 과제였는데 이 책은 86명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글을 6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그들의 주장을 요약해놓은 책이다. 이 중에서 화요일은 페미니즘 내에서도 epistemology(인식론)와 관련된 부분을, 목요일은 sexuality(성의 생활적 단면? 단순 성생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와 관련된 부분을 읽어가야 했다. 페미니즘을 인식과 제도의 면에서의 여성인권신장 정도로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이 책은 정말 다양한 관점들을 보여주었다. 어떤 이들은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으로, 어떤 이들은 막시즘적 방법론이나 인종 중심적 방법론으로 페미니즘을 바라보았고 포르노그래피, 소아성애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는 등 아주 다양한 시각들을 볼 수 있었다. 





토론에서 기억에 남는 몇 마디 말들을 소개해보면 좋을 것 같다.


"미국에서 페미니즘은 학문적 페미니즘과 현실에서의 페미니즘 두 가지 큰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미국 현실에서의 페미니즘이 지닌 문제를 "미국"학자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페미니즘 전체의 문제로 전환시키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것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이것은 유럽에서 온 한 친구가 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이 너무 미국 중심적인 것을 비판하며 본인의 조국에서는 이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여러 문제들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은근슬쩍 자기 나라가 더 여성친화적?이라는 자랑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미국 중심적 페미니즘이 학계의 패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막상 유럽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더욱 급진적인 자신들의 주장을 주요 학술지에 실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신분석학과 같은 방법론은 조금은 철 지난 방법론인데 굳이 요즘 시대에 이런 방법론을 사용하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정치사상에서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어 이 논의는 온전히 청자의 입장에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저 질문에서 시작된 정신분석학 방법론에 대한 토의는 거의 20분 이상 지속되었는데 결국 교수의 제재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토론 내용을 이해한(것처럼 보이는) 친구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수업시간 중 20분이나 할애해서 이야기할만한 주제가 아니었다고 해서 큰 위안이 되었다.)


"저렇게 많은 종류의 주장들이 있다면 페미니즘은 그 시급성과 별개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힘들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시급한 현실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 논하는 학문 분야이다 보니 하나의 목소리를 내서 여성들의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 친구의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긴 논쟁이 있었지만 내가 가장 동의하는 대답은 "주장이 많다고 꼭 발전하지 마란 법은 없지"라는 아주 간단한 대답이었다. 소수 인권 문제나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되는 것 같다.)




세 개의 과제 (짧은 페이퍼 두 개와 긴 기말 페이퍼) 모두 한 두 가지 방법론만을 사용하면 되는 과제다 보니 8가지 방법론을 모두 집중해서 공부하기는 힘들다. 페미니즘 또한 학문적으로는 내 연구주제나 관심 주제에서는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시급한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주제다 보니 더 큰 관심이 갔다. 





이렇게 8주 차 수업이 끝나면 이 주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돌이켜 볼 시간도 없이 9주 차 리딩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 수업 말고도 다른 수업들도 리딩이 산적해있다.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생각할 시간 없이 학기가 너무 급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그래도 학기가 더 급하게 지나가서 당장 방학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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