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학교 생활의 꽃! (꺾어버리고 싶은 꽃...) 도서관 생활에 대해 써보려 한다.
도서관이 책을 몇 권이나 소장하고 있는지 등의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내용은 위키피디아만 찾아도 알 수 있으니... 도서관에 대한 특이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서관 중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내가 가장 자주 가는 도서관은 레겐스타인(Joseph Regenstein) 도서관인데 여기가 한국 대학으로 치면 중앙도서관 같은 느낌의 도서관이다. 여기 학생들은 대부분 이 건물을 매우 조잡한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다녀보니 진짜 흉물이다. 대단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외관에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의미로 만든 것 같다.
재밌는 건 이 도서관이 시카고 대학의 nerdy 한 모습을 정말 잘 보여주는 상징 같은 곳이라는 점이다. 이 도서관에는 건국의 신화와 같은... 건립 신화가 존재한다. 나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은 이야기라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도서관이 지어질 무렵 원래 이 자리에는 체육관인지 운동장인지 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운동 같은 거 할 시간에 공부 한자라도 더 하자고 해서 운동장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이 도서관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 와서 몇 달 공부하면서 학교의 분위기를 겪어본 결과 충분히 저런 짓을 하고도 남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저 이야기를... 믿기로 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원래 저 자리에는 Stagg Field라는 운동장이 있었다고 한다.
레겐스타인 도서관 바로 옆에는 만수에토(Mansuetto) 도서관이 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레겐스타인과 연결되어있다. 여기는 꽤 최근에 지어진 곳인데 있어 보이기 위해 유리돔으로 지은 것 같지만... 볼 때마다 허구연만 생각난다 (허구연의 돔 드립 참조). 1층은 전부 공부하는 곳이고 지하로 몇 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자료들이 숨어있다고 한다. 처음엔 멋있어서 가끔 가서 공부하고 그랬는데 사방이 유리로 다 뚫려있고 칸막이도 없고 결국 집중 안돼서 요즘엔 안 간다.
이 외에도 법대 도서관인 D'Angelo Law Library와 Cathay Learning Center도 가끔 간다.
법대 도서관은 최고의 시설과 조용한 분위기로 공부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멀어서 자주 안 간다. 학교 내에서 가장 있어 보이는 건물 중 하나인 듯싶다. 그리고 신기한 게 레겐스타인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이 아무리 지나다녀도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데 법대 도서관은 누가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모두가 그 사람을 쳐다본다. 법대 분들 집중력이 약한 건지 아니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크신 건지 모르겠지만 움직일 때마다 받는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안 가는 면도 있다.
Cathey Learning Center은 예전 중앙도서관이었던 Harper Library를 개조해서 열람실로 만든 곳이라고 들었다. 왜 나는 여기를 Stuart Reading Room이라고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들어가 보면 마치 옥스퍼드 대학에 있는 해리포터 급식실(?)과 흡사한 분위기라 친구들이 학교에 놀러 오거나 하면 가끔 들린다. 근데 여기도 너무 열린 공간이라 막상 집중은 잘 안된다. 가보면 항상 유학생들이 많이 와서 공부는 것 같았다.
레겐스타인 도서관은 아침 8시에 문을 연다.
오전 수업이 있는 날(화, 목)이면 보통 7시 50분쯤 학교에 간다. 도서관 카페는 8시 30분이 되어야 문을 여는데 중간에 다녀오기 애매해서 보통 주변 카페에 들려 커피를 사 간다. (여기는 웬만하면 6시 30분부터 카페 문을 열어서 아주 편하다.) 그러면 8시에서 8시 10분쯤 도서관 도착. 4층으로 올라가서 자리 잡고 공부한다 잔다. 4층은 종교학, 철학, 고전문학, 그리고 근동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난 그냥 사람들 제일 많이 가는 2층이 너무 붐벼서 매번 4층으로 가는 게 버릇이 돼서 여기로 가는 것뿐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일찍 도서관에 가 본건 여기 와서 처음인 것 같은데 8시에 와도 이미 사람이 꽤 있다. 진짜 진절머리 나는 학교 분위기. 수업이 없는 날은 보통 점심을 먹고 가서 저녁 먹을 때쯤 집에 오거나 아니면 집에서 밥만 후딱 먹고 다시 갔다가 밤늦게 집에 온다. 짧게던 길 게던 도서관은 매일 가는 것 같다. 그러니 흉물처럼 안보일 수가 없지.
한국에서는 열람실에 카드 찍고 자리 정해서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는데 여기는 그냥 먼저 온 사람이 임자고 자리 맡아 놓고 수업 가고 이런 거 없다. 놓고 가면 다 훔쳐 가니까. 오히려 항상 자리가 있어서 이게 더 편한 것 같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다음 수업이 있지 않는 이상 같이 수업 들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도서관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도서관 문 앞에서 (겨울에는 추우니까 도서관 1층 카페 앞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수다의 핵심은 아무래도 수업 내용이다. 성장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한 시간 두 시간씩 수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혹시 누가 이상한 발표라도 했으면 뒷담화 엄청 깐다. 수업보다 훨씬 가볍게 이야기 하지만 사실 여기서 은근슬쩍 자신들의 논문 주제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고 배경 이야기도 꺼내면서 서로에게 코멘트도 받고 조언도 듣게 돼서 이 시간이 수업만큼이나 귀중하다. 또 수업에서 혹시 못 알아듣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친구들이 토론하는 내용을 귀담아듣다 보면 이해가 될 때도 있다.
한국에서도 도서관을 열심히 사용했고 1년 넘게 도서관 알바도 했지만 이 곳의 도서관이 정말 다른 점은 바로 자료의 양, 그것도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껏 리서치를 하는 도중 "로그인"의 벽에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중요하고 흔한 데이터베이스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액세스를 위한 구매를 해놓지 않아서 자료를 볼 수 없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벽에 막히는 일이 거의 없다. 웬만한 자료는 다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고 친절하게 "라이브러리 세션"이라는 세미나를 통해 전공 별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한다. 나도 MAPS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서관의 정치학 전공 사서에게 데이터베이스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오프라인 자료의 경우에도 신기한 서비스들이 제공된다. Scan and Deliver의 경우 책의 필요한 부분을 스캔해 파일로 보내주는 서비스인데 2~3일의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직접 가지 않아도 스캔해서 준다는 점이 매우 편리하다. Borrow Direct는 아이비리그 학교들을 중심으로 도서관 자료를 쉐어 하는 프로그램인데 쉽게 말해 우리 학교에 없으면 남의 학교 책을 보내주는 식의 프로그램이다.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UBorrow나 Interlibrary Loan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여기저기 다양한 학교들의 자료를 손쉽게 빌려볼 수 있다. 전공서적 가격이 워낙 비싸기도 하고 책을 한 번 빌리면 한 쿼터 내내 빌려주기 때문에 타 학교의 자료라도 미리 빌려만 놓으면 교과서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하다.
이렇게 이곳에서의 내 생활은 일상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싫어서 도서관도 알바만 끝나면 칼같이 귀가하고 열람실은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할까 말까 했다. 여기서도 도서관이 싫은 건 마찬가지다. 나는 원래 집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도서관 같이 너무 조용한 곳은 오히려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 전체가 도서관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이 분위기에 따라가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니까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사는 중이다. 방학이 돼서 어서 집에 좀 붙어있고 싶다.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하고 핫초코나 마시면서 뒹굴고 싶다. 도서관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 붙여놓은걸 보는데 화가 났다. 그런다고 오고 싶을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