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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을 지었다는 대성당을 보고 감격하다.

- 7박 8일 서유럽여행 (14/25)

18 AUG2008


여행을 갔다 오면 몸무게가 느는 사람이 따로 있다?!


맛이 있건 없건 간에 여행지에서 현지 식사는 여행의 의미를 배가 시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한식을 고집하는 분들과의 갈등이 종종 있는 것 또한 여행지의 불편사항이다. 그러나 별생각 없이 제공되는 음식 또한 불편사항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식사를 때웠다.'라고 하는 것은 맛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어떤 의미이든지 간에 그저 위를 채웠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차라리 배달 주문된 식은 피자를 먹더라도 현지 음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친 여행객의 허기를 때웠다고 표현하게 하는 것은 최악의 식사임이 틀림없는 증거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장이 반찬에다 시간까지 재촉당하니 우격다짐으로 가득 때웠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환경, 눈에 보이는 생경한 풍경에 젖어 바깥 활동과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이고, 스트레스가 적다 보니 결국 몸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여행 경험이 적은 나에게 이번 7박 8일 유럽여행은 몸무게 3kg를 덤으로 보태주었다.


'베네치아'가 대표적인 관광지라면, '밀라노'는 상업지에 훨씬 가깝다.


베네치아를 떠나 밀라노까지 버스로 4시간 길을 창밖 풍광을 바라보며 졸음을 견디고 도착했다. 밀라노를 향하는 길가에는 포도밭이 즐비하고, 대리석을 캐는 채석장과 우측 멀리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을 힐끗힐끗 보여주었다.

[사진설명 : ①중세 그대로 남은 마을들 ②무수히 지나치는 포도밭 ③ 노천 대리석 채석장④ 휴게소의 다양한 샌드위치, 부실한 점심 때문에 눈에 밟히고 ⑤힐끔거리게 보이는 알프스의 눈 자락 ⑥ 피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 ⑦ 롬바르디야 평원의 석양 ⑧ 밀라노의 퇴근길 정체]


지난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정권 시절에 국가에서는 이러한 불안한 국가의 경제를 타개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써 밀라노 프로젝트란 대구 섬유산업을 21세기 첨단·고부가 산업으로 탈바꿈시켜 국가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사업을 출발하게 되었다. 딱히 밀라노를 지목했다는 것만으로 밀라노 섬유산업의 유명세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셈이다.


패션과 유적과 축구로 밀라노는 함께 떠난 여행객들 각각의 마음을 갈라놓았다.


밀라노는 여행객들에게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 멋을 사랑하는 젊은 여성에게는 패션이, 축구팬들에게는 인터밀란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에서 한마음이었던 여행객들의 마음이 각자 자신이 그리는 도시의 모양이 달라지게 만드는 곳이 밀라노이다. 이만큼 밀라노는 다양한 관심을 충족시켜 주는 도시임이 틀림없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독특한 호감으로 다가서는 도시 밀라노. 도시 한가운데 포(Po) 강이 흐른다. 이 포 강은 이탈리아 북부를 정확하게 서에서 동으로 1천5백 리(652Km)를 밀라노 도시 한 가닥을 감고 지난다.


밀라노 시내 인구는 수도 로마 다음으로 많고, 도시권 인구는 로마를 훨씬 초과하여 이탈리아 최대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행정적 수도라면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적 수도라 할 정도로 이탈리아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다. 이탈리아 최대의 주식시장, 주요 은행의 본점, 여러 대기업의 본사가 집중되어 있으며, 시 외곽에는 수많은 공장이 분포하여, 유럽 유수의 상공업지대에 속한다.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매우 유서 깊은 도시로 많은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있어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한,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탈리아는 2004년에 우리의 제15위 교역상대국이자 EU 국가 중 제3위 교역상대국이다. 우리 교민 5천여 명이 있는데, 유학생이 3천여 명을 차지하고 그 외에 소수의 상사 주재원, 유학 중인 신부, 수녀, 장기거주 교민이 있다. 이번 여행의 이탈리아 현지 안내자는 성악 유학생이 장기거주 교민으로 눌러앉은 경우라 한다.


인터밀란(Intermilan)이 속해 있는 세리에 A(Serie A)는 4부로 구성된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 가운데 1부 리그를 가리킨다. 대중적인 인기와 선수들의 실력, 연봉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갖추어 프로축구의 '꿈의 무대'라고 일컬어지고,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에스파냐의 프리메라리가와 함께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로, 명문 클럽이 많고 클럽 간의 평준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인터밀란 외에도 AC 밀란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시간을 주면 홈 경기장이라도 찾아보았으면 좋으련만, 아들 녀석에게 줄 인터밀란의 티셔츠 구매로 만족했다.


위성사진으로 밀라노의 명소 세 곳을 한 곳으로 모아보았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 두오모(Duomo di Milano, 밀라노 대성당)


두오모는 현재 밀라노 대주교의 주교좌성당이다. 고딕 건축 양식인 대성당은 기독교 신앙을 선포하였으며, 그것을 위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예배와 음악의 유산을 수립한 의미 있는 장소이다. 두오모 대성당은 2,245개의 거대한 조각 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길이 157m, 높이 108.5m로 바띠깐의 싼 삐에뜨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의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다.


우리의 역사로는 조선(朝鮮)이  개국되었던 1392년에 6년 전 1386년, 지아 갈레아쪼 비스콘티 (Gia Galeazzo Visconti) 공작의 명에 의해서 착공되었고, 45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어, 190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두오모의 대성당이  공사되는 기간에도 이 성당 내부에서 계속 예배를 보았다고 한다. 흰색 대리석이라 대기가 만든 검은색 오염을 2002년부터 제거하고 있다는데, 면봉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닦아내는 이 작업은 50년이 족히 걸린다고 한다. 우리네 남대문이 복원되고도 몇십 년이 지나서야 이 두오모의 청소작업이 끝이 날 모양이다. 우리에게 역사를 긴 호흡으로 보아야 한다는 조언을 건네주고 있다.

두오모 성당 정면 앞쪽으로 두오모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이 광장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다. 이 광장은 시당국의 계획으로 1862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가 조성했다. 중앙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념 동상이 서 있고, 밀라노 시민의 휴식 장소로 애용된다


비 또 리오 에마누엘레 2세 회랑(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in Milan)의 유행 선도


비 또 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는 이탈리아 도시국가 중 하나인 사보이 왕국의 왕으로 1870년에 가리발디 장군과 함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시켰다고 한다. 1831년 사보이 가의 혈통이 끊어지자 방계의 사보이 카리냐노 가(家)의 카를로 알베르토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초대 이탈리아 왕이 되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통일의 기초가 되었음에도 1947년 공화국 헌법 보칙에 의해 사보이 가의 가족이나 자손은 선거권이 박탈되고 공직에도 취임할 수 없으며, 구 국왕과 배우자, 그리고 남자 자손은 이탈리아 영내에 들어올 수 없게 규정되었다고 한다.

두오모 성당 바로 옆에서 스카라 극장까지 이어지는 이 회랑은 이 비 또 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를 기념 1865년에서 1877년에 걸쳐서 지어진 것으로 천정은 유리로 길게 빛을 비추게 장식되어 있으며,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4개의 대륙이 특징적으로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다. 많은 명품 가게와 식당, 카페들이 있어, 화려한 유행과 패션의 거리 밀라노임을 실감이 나게 한다. 이른바 신상품이 나오는 곳이라 흥청거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행을 기록하다 보니, 당시에 충실하지 못한 아쉬움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7박 8일 유럽 여행기를 14번째 기록하면서, 1만 2천 장의 사진 중에서 고작 몇 장의 사진만을 고를 수밖에 없음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너무 바쁜 일상 중에서, 갑자기 정한 여행이라, 역사책만을 읽고 떠난 여행이지만, 다녀오고 나서 그 장면 장면이 연상되는 기록의 시간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우리네가 얼마나 현재를 소홀했었든가 하는 생각이다. 그 당시에 조금 더 충실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되뇐다. 우리에게 현재는 항상 소중하다.


밀라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49분. 호텔방에 들어선 시간이 밤 9시이다. 밀라노에서 저녁시간 고작 3시간 11분 동안 무엇을 보았겠는가? 여행은 그렇게 갑자기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밀라노에서의 아쉬움은 라 스칼라(La Scala) 극장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과 최후의 만찬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현지에서의 최후의 만찬보다는 사진을 통해서 접했던 최후의 만찬이 더 선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밀라노까지 와서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깝도록 아쉽지 않은가?


7박 8일의 나흘째 밤은 밀라노에서 지낸다. 닷새째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된다. 드디어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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