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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지 이탈리아를 넘어, 자연여행지 스위스로 가다

- 7박 8일 서유럽여행 (15/25)

20 SEP2008


7박 8일 유럽여행의 나흘째 밤은 밀라노에서 지냈다.  


여행기를 늘려 쓰기로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이렇듯 7박 8일 유럽여행을 이리저리 곱씹다 보니 15편째 글이 되어서야 닷새째 날을 맞이한다. 다시 여행기를 시작해 본다.


닷새째 날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되었다. 역사의 나라 이탈리아를 넘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스위스, 그것도 최고봉인 융프라우를 향한다. 융프라우는 유럽의 꼭대기(Top of the Europe)라고 선전을 해대는 통에, 산 정상을 오른 지가 꽤 오래된 내 게으름에 은근한 기대감을 채워준다.


새벽 5시. 생전 처음 이탈리아식 아침 도시락을 한 봉지씩 배급받았다.

시든 사과 한 알에, 작은 요플레 한 통, 말린 아주 작은 식빵과 배 주스 한 팩 그리고 봉지에 넣어 파는 크로와상이 전부였다. 오전 5시에 받아 든 아침 도시락을 꾸역꾸역 고프지도 않은 위에 구겨 넣듯 먹어버렸다. 절대 든든하지도 않았지만, 이마저 거부하면 언제 점심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니 거부할 용기는 결코 없었다.


숙소인 밀라노의 홀리데이인 호텔을 떠나 스위스 인터라켄을 향해 출발한 시간은 여섯 시. 일행 중에는 7학년 5~6반 (75~76세란 뜻이다) 시니어도 계시고, 초등학생도 있으니 강행군이라 아닐 수 없다.

북으로 향하는 길은 점차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듯,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으나, 북으로 향하는 자동차나, 남으로 향하는 자동차가 끊이질 않는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육로와 항로가 물동량을 움직이는 길. 그중에서도 육로는 항상 붐빈단다.


오전 7시 10분, 밀라노 호텔을 떠난 지 딱 한 시간 만에 스위스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검문소의 흰색 조명이 이채로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앞차가 꿈지럭거리자 버스기자 '레오나르도'가 이를 참지 못하고 클락숀을 울렸다. 그때 검문소를 지키던 검문소 직원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기분을 풀으려 직원이 검문을 중단하고 사무실로 들어간 것 같다. 거의 10여 분을 '레오나르도'가 검문소 사무실에 들어가 사정사정을 한 끝에 스위스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묘한 긴장감이 국경 검문소를 휘감았다.


"Che Bello! Arrivano gli italiani."  

스위스 국경을 넘어서자 "Che Bello! Arrivano gli  italiani."라는 사인 보드가 세로로 서 있었다. 서둘러 사전을 찾아보니.... "아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에 곧  도착합니다."라는 뜻이었다. 난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감으로 문장을 이해했었다. "이제 이탈리아여  안녕~"이라고 나는 상상했었다. 얼마나 바보스러운 착각인가? 언어에 대해 너무 무지한 상태로 떠난 것 또 하나의 자책이 되었다. 잘 생각해 보니,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를 향해 오는 길목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방향만이라도 제대로 보았으면 해석이라도 그럴 싸해 보였을 텐데.


이탈리아 어와 프랑스 어 그리고 독일 어가 모두 통하는 스위스는 뭔가 달랐다.


스위스에 들어서자 호수와 가파른 산 그리고 아스라이 자리 잡고 그림 같은 집들이 그 사이에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자동차 번호판도 유럽 연합의 공통자동차 번호판과는 판이한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희끗희끗 흰 정수리를 보이는 알프스의 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맴돌던 이탈리아 역사책이 자리 잡던 자리를 스위스의 자연이 바꿔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날리는 눈발이 아침 햇살에 비추어 마치 산 정상에서 봉화라도 올린 모양이었고, 산을 바라보는 우리를 의식해서인지 색상마저 예사롭지 않았다. 더구나 가까운 산자락 가파른 포도밭을 일구는 농부의 정성마저 신선했다.

오전 8시 30분, 잠시 휴게소에 버스가 멈추었다.


휴게소 매장에는 축산 가공식품이 눈에 띄게 많았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더니 에스프레소 저리 가라는 카페인 300% 수준의 숯 같은 종지 커피를 내놓았다. 어찌나 커피맛이 쓰던지, 그래도 정작 쓰디쓴 첫맛을 참고 마셔보니 고소한 중간 맛에 뒷맛은 깔끔했다. 난 여기서도 호기심을 멈추질 못했다. 벽 안쪽으로 붙어 있는 ATM(현금인출기)이 참으로 신기했다.


다시 버스는 점점 알프스 산맥 안으로 접어든다. 오랜 시간을 지나서 벗어나곤 하는 터널이 여러 곳.

오전 9시 15분쯤 Zentral Schweiz (= Central Swiss, 중부 스위스)를 지나치고 있었다.

달력에 나오는 사진들의 출신지가 바로 이곳.


스위스를 꿈꾸는 여행가들이 모두 이런 광경을 기억의 정 가운데 두고 있었으리라.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와 색감으로 자리 잡아 놓았을까.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비치는 장면을 향해 카메라를 한 시도 쉬지 못하게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호숫가 기나 긴 인공 산책길을 애견과 함께 걷고 있는 건강한 시니어 한 분을 카메라에 남겼다. 선글라스에 짧은 머리의 시니어 역시 달력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산 정상을 몇 개를 넘어서 오전 11시. 이탈리아 밀라노를 출발해서 5시간 만에 스위스의 도시 인터라켄(Interlaken)에 도착했다. 인터라켄의 공기는 마치 사이다에서 나오는 탄산가스처럼 코끝이 찡하도록 시원하면서 알싸했다.


오랜만에 다시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한 여행기. 오늘은 7박 8일 중 닷새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의 육로여행기를 사진으로 도배하며 마감한다. 차라리 설명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이동이었다.


다음은 인터라켄에서 점심을 먹고 유럽의 최정상 융프라우를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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