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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Aug 23. 2021

타인의 삶

제1화 : 질문에 1초 내에 답하시오

혹시 고친데 있어요? 형이나 시술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요즘 문신한 사람도 엄청 많던데 문신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거 같아요?


불법 다운로드 같은 건 안 하시죠? 친구나 가족 아이디를 빌려 쓰신다던가...


코로나 수칙은 얼마나 잘 지키세요? 솔직히 100% 지키는 건 무리가 좀 있죠?


어린이 보호 구역이나 노인. 장애인 보호구역에서 제한속도는 얼마나 잘 지키시나요? 고속도로 제한 속도는요? 혹시 오토바이 타시면 막히는 차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며 운전하시지는 않죠?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로 인도 위를 달리신 적은요? 아무래도 간단한 무단횡단 정도는 효율을 위해 하는 게 좋겠죠?


사업하시나요? 프리랜서? 수입이나 재산신고라던가 세금납부는 정직하게 잘 하시는거죠? 뭐 재벌이나 강남 부자들처럼 엄청 해 먹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하는 정도 적당히는 괜찮잖아요.


요즘 어른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없다는데 좋은 어른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조건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청년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낙태는 어떻게 생각해요? 동성애는요? 종교는? 정치는?




아마도 당신의 대답은 나와 다르고 나의 대답은 그와 다를 것이다. 디테일로 들어갈수록 그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형성된 '생각과 태도'를 표준으로 삼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모두 다르다. 우리의 지문과 유전자가 모두 다르듯.





아주 오래전 재즈 아카데미라는 음악교육 시설에 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줄은 가격이 꽤 나가기 때문에 소리가 먹먹해지면 줄을 삶거나 세제로 빨거나 해서 다시 쓰는 것이 당시 널리 행해지는 방법이었고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한 친구가  내 악기를 쳐봐도 되냐고 물어봐서 그러라 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잠깐 내 베이스를 쳐보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 줄이 썩었는데요? 줄 좀 갈아요!" 그 친구는 강남 어디 엄청 부자 동네에 살았었고, 당시 몇 백만 원짜리 쉐도우스키(https://www.sadowsky.com/)라는 악기를 쓰고 있었다. 베이스 줄은 늘 우주 최강 포데라(https://fodera.com/)라를 썼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실용음악과가 흔해지고 부모님들도 자식들 좋은 대학 가라고 빚을 내서라도 지원을 해주지만, 당시에는 프로들도 어렵게 마련해 쓰는 악기를 쓰는 샘이었다.


그 순간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속으로 느꼈던 감정은 정확히 '졸라 재수 없네...'였다. 근데 정말 걔는 재수가 없었던 걸까? 




누구에게나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환경이 있다.


A는 태어나보니 서울 금싸라기 땅 대저택에 일 도와주시는 분들이 몇 분씩 같이 사는 집 자식. 넓은 마당에 셰퍼드가 뛰어다니고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검은 외제차 트렁크에는 늘 좋은 선물들이 들어있다면... 그런 집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거쳐 중, 고등학교 때는 방학마다 미국으로 연수도 좀 다녔고, 학부는 하버드에 박사는 스탠퍼드에서 했는데 그때까지도 주로 비슷한 환경의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그들은 '대학 입학 선물'이라는 말에 포르쉐 정도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오랜만에 가볍게 한잔 하자!'라는 말에 바로 최고급 술집에 몇백짜리 양주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재수 없나?


그럼 B의 삶은 어떤가. 태어나보니 어느 나라 빈민촌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 딸. 아빠는 약쟁이에 허구한 날 엄마와 B를 때린다. 그래도 엄마는 꿋꿋이 다른 남자를 집으로 불러 논다. 옆집 아저씨에게 B가 강간당한 사실을 알아버린 친오빠가 그날 바로 그 새끼 머리에 구멍을 냈다. 정작 자기도 다른 집 어린 여자애를 강간했으면서 말이다. B가 마약중독자 레즈비언이 되는데 이런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까... 요즘 온 동네가 아시아 상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에 불 지르고 약탈하는데 혈안이다. B에게 '삶'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 가지 삶을 너무 극단적인 예라 치자. (사실 극단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불운하고 너무 부유한 삶은 너무 널려있다.) 그럼 저 중간에 끼어있는 삶이  평균일까? 그 사이 어디쯤이 평균일까? 서점에 있는 책은 다 읽었을 것 같은 지식에 학벌도 좋은데 생각하는 꼬라지는 영 아닌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부분은 먹고살만한데 불행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그렇지 못할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뼈대 있는 가문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투쟁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는 반면 콩가루 가문의 뼈대를 세워낸 사람도 있다. 세상의 평균이라던가 평범함을 찾는 것은 과연 가능이나 한가.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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