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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Dec 18. 2023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

건강한 성인 기준, 우리는 하루에 약 35000번의 의사결정을 한다고 한다. 하루 24시간 = 86400초, 대충 2.5초마다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하며 살아간다는 거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어있는 동안에는 쉴 새 없이 선택이라는 것을 하고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


작은 선택들이 행동을 하게 하고, 그 행동들이 쌓여 습관이 된다. 그리고 그 습관들이 내 인생을 결정한가. 이렇게 무섭게 밀려오는 선택의 기로에서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엄청난 천재나 대단한 학자까지 갈 것도 없이 인터넷만 봐도 학식이 대단한 사람, 통찰이 대단한 사람, 지혜로운 처세에 능통한 사람, 쉽게 말해 똑똑한 사람들이 하늘의 별보다 많다.


그러나 더 많이 알고 더 똑똑한 사람일수록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학식이 넓고 지혜가 깊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갖거나 찾을 수 있고,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이라는 것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타당한 이유와 근거에 따라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많은 생각들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생각둘은 현재 내가 놓여있는 삶의 위치, 그러니까 이전의 선택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의 내 상황을 변호하기 위한 결론에 짜맞춰지기 일쑤다. 이미 답은 있고 근거를 찾는 쪽에 가깝다.


서울의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는 것을 열 올려 비판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늘 신빙성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지적했지만, 그가 소유한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뒤 생각이 달라졌다. 물론 그 달라진 생각 역시 신빙성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는 올랐던 집값이 다시 떨어지자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 예술가는 예술계에도 권력이 존재하고 그 권력의 중심에서 실력도 없는 꼰대들이 월권이나 행사한다고 불만이 많았다. 그건 예술도 아니다는 식으로. 그러나 시간이 흘러 교수 자리도 하나 맡게 되고 심사도 좀 보게 되면서 그가 조금씩 달라졌다. 하는 일마다 정부에서, 기업에서 지원금도 잘 받고, 소위 잘 나가가는 예술계 스타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 실력도 없다고 욕하던 꼰대들하고 형님 동생으로 잘 지낸다. 물론 그가 가식을 떠는 건 아니다. 단지 예전에 세상 모르던 시절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많은 오해를 했을 뿐이다. 이미 지금의 삶이 정당하다는 근거는 그의 머릿속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도 지원금이 끊기고 일이 줄기 시작하자 현 정부의 문화 예술 정책과 썩은 예술계를 다시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판할 때든 옹호할 때든 늘 스마트하고 지적이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상황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두가지 예가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 생각이 내 삶을 변호하는 수준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냥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가진 경우의 수는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선택들이 최선이 아니라면, 단지 지금까지의 선택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내 삶을 변호하는 수준이라면, 이전의 것을 철저히 반성하고, 지금 당장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전의 선택도, 지금의 내 삶도 그리고 이 순간의 선택도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변명이나 변호가 아니며 정해진 결론의 근거를 찾은것이 아니라면, 살아온 방향 그대로 또 믿고 한걸음 나아가는 것.


그뿐이다.





사신 출처 : <a href="https://pixnio.com/ko/media/ko-2918247">사진</a> <a href="https://pixnio.com/ko/author/djovan">djovan</a> 에 <a href="https://pixnio.com/ko/">Pixni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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