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꿈을 안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초보 유학생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얘기다. 그 흔한'구텐탁'(Guten Tag) 정도나 알고 떠난 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첫 번째 코스는 어학원.
20살 이후 거의 10년을 철저한 야간형 인간으로 살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나라도 바뀌고 언어도 환경도 싹 바뀐 것도 당황스럽지만 최대의 난제는 매일 9시까지 수업을 가야 하는것이었다.누구나 그렇듯이 독한 마음을 먹고 초반 페이스를 잘 이끌어갔으나 아니나 다를까 취침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어느 날 일어나 보니처음 찾아온 고비.
이대로는 지각이다.그때가 7월 어느 날 쯤이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버스정류장까지 뛰었다. 그리고숨을 헐떡거리며선택의 기로에 섰다.
옵션 A : 당장 오는 일반버스를 타고 지하철(U-Bahn)로 갈아타기.
옵션 B : 22분 후에나 오는 급행버스(Schnellbus)를 타고 한 번에 가기.
그때의 독일은 지금의 한국처럼 스마트폰에 딱 찍으면 최적의 경로가 나오는 나라도 시대도 아니었다. 물론 마음은 급했고 일반버스는 이미눈에 보이는 거리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당연히 나의 선택은 옵션 A. 일반버스 + 지하철.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버스정류장에서 22분이나 맥없이 서 있을 순 없을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지켜온 개근인데!! (물론 훗날 온데간데 없어진 결심이지만...)
버스를 타고 또 열심히 뛰어서 지하철로 환승을했다. 달리고 달려 어학원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면서 내가 확인한 것은 내가 버린 그 카드, 바로 그 급행버스가 이 역을 한참 전에지나갔다는 것이다. 이미 정류장의 전광판은 그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나는 집 앞 정류장에서 편하게 담배나 한 대 피고(15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은 버스정류장에서 길에서 편하게 담배를 핀다) 땀도 식히면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지하철 갈아탄다고 쓴내나게 뛸 필요도 없었고 플랫폼에서 발을 동동거릴 필요도 없었다. 그냥 편히 오면 될 것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될 수 있으면 눈코 뜰 새 없이 하고 있을 때,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편안해진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위안. 하지만안 하니만 못한 부지런을 떨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일화는 단지 열심히 사는 것이 더 비효율적이었던 경험이다. 하지만 때로는 열심히 살며 애써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르고, 더 안 좋은 세상을 향해 기를 쓰고 노 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무엇을 하는 쪽이 늘 매력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