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유전병이 있다?
독일에 온 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가장 눈에 띈 점이 있다.
여기는 왜 이리 휠체어가 많을까?
어학원을 다녀오는 길거리며 대중교통에서 매일 같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만난다. 자주 본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매일매일이다. 오는 길 - 가는 길에 항상.
처음에는 독일에 유전병이 더 많은가 의심도 해봤고, 물이나 음식에 문제가 있나도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유의미한 근거가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통계적으로 독일의 장애인 출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이 또한 실제 장애인 비율이 한국보다 많다기보다 ‘누가 장애인인가’라는 산정 기준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라는 것이 지금의 중론이다. 장애인대한 기준이 넓은 선진국일수록 장애인 출현율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21년 OECD 국가의 평균 장애인 출현율은 24.3%. 한국의 장애인 출현율은 2017년 기준 5.4%. 미국 일본 7.4%, 스웨덴 10.3%, 미국 12.6%, 독일 17.5%, 호주 18.3%
나는 한국에서 사는 동안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국을 떠나온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버스는 여전히 높은 계단을 두세 칸씩 올라서 타야 하고, 비교적 넓은 뒷문 역시 중간을 가로지르는 바가 있어 결국은 좁은 버스가 아직도 많다. 장애인 마크가 붙어있는 저상버스라는 상황이 조금 낫다지만 휠체어를 위한 철판이 내려지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휠체어를 위한 자리나 노약자, 임산부석도 따로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하철에 비해서 버스는 유독 더 심하다. ‘어차피 누가 휠체어나 유모차를 갖고 타는 그런 몰상식한 일은 없을 거야’라는 무의식이 모두에게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하철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한국은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대한 인식 역시 수준이하다. 나도 늙었다. 나도 피곤하다. 내 짐도 무겁다. 나도 세금 냈다. 등등 이유는 많다. 멀쩡히 엘스컬레이터가 작동하지만 엘리베이터 눈에 보이면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줄 뒤에 휠체어를 탄 이용자나 유모차를 탄 아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 와도 비켜줄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고 피곤할 시간일수록 몰상식한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통념의 문제다. 사회적 합의가 약속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통념이 되는 것이다. 장애인을 생각한 모든 시설과 건축물, 공공장소에서의 태도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상관없이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독일에서 버스를 타면 중간중간 오래 정차하는 일이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장류장에 있으면 기사가 내려 버스에 설치된 철판을 내려준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하거나 불만하지 않는다. 중요한 약속이 있다거나 하면 속으로야 애가 타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눈치조차 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불편한 심기가 보일까 스스로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버스도 장애인이 못 타는 버스가 없고, 기사로서 장애인 탑승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 있는 것은 물론 평소 운전 방식 역시 다르다. 일반인도 버스 안을 날아다녀야 하는 한국은 아직도 멀었다. 액셀 좀 천천히 밟고 브레이크 좀 미리 밟아서 부드럽에 정차하기가 그렇게 힘든 일일까 싶다.
버스뿐 아니라 기차도, 보도블록도, 건물도 다 마찬가지다. 생활전반에 깔려있는 바탕이 다르다.
독일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있다.
장애를 가진 자가 건축물과 그 외의 시설들(교통수단, 기술적 장비, 정보 시스템 처리, 시청각 정보의 출처, 소통 장치의 설치, 그 외의 생활 속 설치물)을 특별한 도움 없이 보편적 방법으로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사용가능하여야 한다. 여기서 장애인의 필수 보조기구의 사용을 허용한다.
- 장애인 동등법 4조의 내용-
내가 독일에서 장애인을 더 많이 보는 이유는 그들이 일반인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뜻은 한국은 장애인들이 함께 사는 사회로 나올 수 없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어디를 가던 불청객 취급을 받고 눈치가 보이는 저급한 사회적 인식. 불가능하고 불편한 시설과 건축물. 아이돌들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로 뻗어가도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장애인들의 요구를 데모할 때마다 다 들어줄 필요도 없고, 신고되지 않은 집회를 허용할 필요도 없다. 불필요한 대우를 해줄 필요도 없다. 그런 일에는 정치적인 사안도 끼어 있을 수 있고, 큰 이권에 관련된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이 아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단지 그런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야 하는 것이다. 분쟁이 있던 없던 사회적 시설과 인식의 개선이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독일 사람들은 불평불만이 많고 말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자신의 권리가 조금이라고 침해되면 난리가 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마도 불편할 것이다. 손해도 볼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