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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Mar 07. 2024

선물의 격이 다른 독일

내가 받아 본 가장 큰 선물

한국이라는 나라가 기적적인 속도로 발전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경제적 효율성'이 빠질 수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 먹고사는 일, 돈을 버는 일이 안 중요한 때가 있었겠냐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1950년 6.25 전쟁 이후 정말 무슨 일 하던지 '그거 해서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태도가 지배하는 사회로 계속 달려온 것 같다. 물론 온 국민이 '돈과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갖고 살았기에, 이 작은 땅덩이에서 그 적은 사람들이 이만큼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약 70년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달려왔기에 경제적 성공 이면에 곪고 썩은 부작용들이 넘쳐난다.


'경제적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모든 것이 '돈의 힘'에 짓눌려버린다.




꽃 선물을 좋아하는 독일


한국에서 꽃을 선물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입학식, 졸업식, 어버이날, 연인에게 고백하는 날, 지인의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는 날 정도나 될까. 한국인이 것이 창피할 정도로 과격한 표현으로 '꽃은 비싼 쓰레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꽃다발을 받으면 '아... 이 비싼걸 왜... 그냥 돈으로 주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날조차 '저치가 곤란하니 꽃다발을 사 오지 말라'라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며칠뒤면 시들어서 버리게 될 꽃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워서 그렇다.


몇 시간 뒤면 똥으로 나올 비싼 밥은 왜 먹고, 올라가면 다시 내려올 등산은 왜 하며,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죽이는 명상을 왜 할까? 그것의 중요성과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그 돈을 기꺼이 쓰는 것이고, 자연과 함께 가까이 땀 흘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다. 것으로는 눈 감고 앉아있는 것 같지만 내 안이 더 충만해지고 개운해지는 몸과 마음을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 보는 것이다.


꽃도 마찬가지다.


독일 사람들은 꽃을 즐길 줄 안다. 입학, 졸업, 연주회는 당연하고, 다른 사람을 방문할 때, 생일, 기념일, 부활절 등등 무슨 날마다 꽃을 선물한다. 굳이 남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더라도 절기에 맞는 꽃을 집에 늘 꽂아 놓기도 한다.


꽃을 즐기는 그 마음은 첫째로 여유다. 한국에서도 '나이가 드니까 꽃사진만 몇 백장 찍는다.'라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 바쁘게 돈과 성공을 위해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꽃은 여유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이 '비싼 쓰레기'를 살만큼 돈이 많아서 꽃을 선물하고, 장식하고, 정원을 가꾸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그 꽃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짜리 선물을 해야 하나?


한국에서는 남에게 선물하는 것도 일이다. 아니 이제는 선물하기를 포기한 것 같다. 받는 사람도 현금이 제일 좋다고 하고 주는 사람도 편하고 얼마나 좋은가. 나는 모든 축하와 위로를 돈으로 하는 문화가 말라비틀어진 꽃같이 느껴진다.


좋아하는 사람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고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다면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그를 기쁘게 할지, 포장지를 뜯으면 깜짝 놀라게 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도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선물'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는 저런 행복한 시간이 포함되어있지 않을까?


독일에서 지인의 초대를 처음 받았을 때, 무슨 선물을 사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어린 학생이나 친구도 아니었고 나이가 좀 있으신 어른인데 적어도 '얼마 이상 가격이 되는 선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친구가 조언을 해줬다. 독일에서는 그런 비싼 선물은 잘 안 한다는 것이다. 보통 간단한 꽃(10-20유로) 정도, 아니면 초콜릿이나 와인정도를 선물한다고. 와인도 보통 한화로 1-2만 원대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조언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그분이 좋아할 만한 초콜릿하나와 와인 한 병을 사서 갔던 기억이 난다.


독일인들은 꽃 한 송이. 2만 원짜리 와인 선물에도 아이처럼 기뻐한다. 작은 선물에 기뻐할 줄 아는 것이다. '이게 얼마인데... 그냥 돈으로 주지'라던가, 고작 이 정도 가격의 선물이라 실망한다던가 하는 일은 여태껏 못 봤다. 기본적으로 독일인들은 내가 이유 없이 타인에게 도움을 받거나 선물을 받는 것조차 의아해할 때 있다. 오래전 학교에서 친구에게 밥 산다고 했다가 "왜???"라며 거의 기분이 나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봤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니까 '선물'을 내가 맡겨 놓은 것을 찾는 것도 아니고 그가 빚을 갚는 것도 아닌, 그냥 마음이고 정성이 전부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냥 고맙고 그냥 기쁘고 그냥 감사한 것. 그냥 좋은 것이다. 2만 원짜리 와인을 들고 천천히 돌려보면서 원산지 얘기도 하고, 마셔본 적 있으면 좋아한다고도 하고 포장이 이쁘다고도 하고 그 작은 선물을 들고 한참을 기쁘게 얘기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냥 현금을 주고받는 것이 '선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돈'은 선물을 아니다. 감사하고 서로 편한 해결책이겠지만 그건 '선물'이 아니고 '계모임'에 가깝다. 서로 품앗이해 주는 것. 중요한 일이 있으면 서로 돈을 밀어주는 계모임말이다. 좋은 일이지만 '선물'의 의미 보다 '돈의 가치'가 훨씬 앞서는 행위다.


독일에서 받은 큰 선물은 '선물의 기쁨은 마음에 있다'있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여유 있는 마음을 갖는 다면 꽃을 사 온 지인의 마음이 보이고, 꽃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 꽃을 가운데 두고 선물해 준 지인과 마주 앉아서 나누는 대화에 선물의 의미가 있다.  무슨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어디 수백억짜리 별장을 사주고, 슈퍼카를 사줘서 기쁜 것은 '진정한 선물'의 의미가 아니다.


진정한 선물의 의미는 돈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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