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칠준비 되셨나요!!!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성중 하나는 '케바케(Case by Case)'다.
같은 가게에서 같은 질문을 해도 사람마다 때마다 일처리가 다르다. 작은 구멍가게뿐 아니라, 가장 큰 은행 (Deutsche Bank, Post Bank), 가장 큰 통신사 (T-Kom, Vodafone, O2), 가장 큰 전기 회사 (Vattenfall), 심지어 아주 중요한 일처리를 하는 관공서까지 늘 일처리가 다르다. 진짜 미쳐버리는 점은 재미있는 점은 같은 일을 같은 사람이 처리할 때도 그 사람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만약 거주권을 박탈당하느냐 마느냐에 기로에서 비자(Visum, Aufenthaltstitel)를 신청하러 갈 때는 일처리를 하는 담당자의 기분이 좋기를 바래야한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도시는 함부르크였다. 대학교 (Universität Hamburg)에서 청강생(Gasthoerer)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롭게 교무처를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가니 무표정하고 독하게 생긴 아줌마가 나를 노려본다. 가뜩이나 독어 때문에 쫄리는데 더 쫄리는 마음으로 청강생(Gasthörer) 얘기를 꺼냈는데 뭔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손사례를 치며 단호하게 "안돼! 안된다고!(Nein! Nein!)"만 얘기한다. 기가 죽어 나오면서도 혹시나 다음 기회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감사합니다....(Danke schön)"라고 공손하게 말하며 나왔다.
그때 나는 독일 친구 3명과 함께 WG(Wohngemeinschaft)에 살고 있었다. 한국식으로 쉐어하우스라고 해야 하나. 월세를 줄이기 위해 여러 명이 한 집을 빌려서 방을 나눠 쓰는 주거 형태를 말한다. 아무튼 그렇게 동거하는 친구한테 이 사정을 얘기하니 그중 젤 똘똘한 한 명이 "내일 당장 나랑 다시 가자!"라고 호의를 베풀었다. '아... 그 아줌마 인상 보면 내가 못 알아들은 게 있어서 그렇지 진짜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이게 될까...'싶었지만 고맙다고 하고 내일 다시 학교로 향했다.
그렇게 교무처 문이 열리고 토비(친구 이름이 Tobi다.)가 웃으면서 몇 마디를 이어가니까 아줌마 표정이 조금씩 풀린다. 나랑 얘기할 때는 끝까지 못 보던 표정이다. 조금 지나니 이 친구가 문틀에 기대고 팔짱을 끼면서 무슨 조지 클루니 폼 잡듯이 얘기를 이어가는데 둘이 하하 호호 웃고 난리가 났다. '이게 뭐지... 젠장.. 인종차별인가...'
아무튼 그렇게 청강생 신청 정보와 서류를 잔뜩 받아서 집으로 왔다.
독일의 '케바케'의 사례는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끝도 없이 썰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독일이라는 나라는 결과 예측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누구누구는 이렇게 했다는데...""아.. 한번 좀 해주세요."같은 방법은 씨알도 안 먹힌다. 원리 원칙이 칼같이 적용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기분에 따라 결과가 바뀔 뿐이다. 가장 방법은 나와 대화하고 있는 그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관련 법률 같은 자료가 찾아서 들이밀 수 있는 상황이라면 꽤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꽤나 오래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다른 상담사를 만나는 것이다. 한 독일 친구는 한 상담사와 싸울 필요도 없이 아니다 싶으면 바로 끊고 다시 전화하는 방법으로 결국 원하는 바를 받아주는 상담원을 내 눈앞에서 찾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도 머지않아 케바케의 국가가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회는 얼마나 복잡한가' 다.
독일, 특히 베를린 같은 경우는 너무 다양한 인종과 상황과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니 지금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이 이 모든 조건의 조항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혼인에 의한 거주비자를 받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전에는 국제결혼이 흔한 일이 아니었을 때는 복잡할 일이 없겠지만 더 많은 국적과 더 많은 특이한 상황들이 생겨날수록 기존의 심플한 조항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진다. 한국 사람과 혼인하는 대상의 국적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국적이 아닌 사람, 외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지만 한국 국적인 사람, 이중 국적자, 다중국적자, 둘은 한국국적자가 아닌데 한국국적의 아이를 가진 부모. 태어나기는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국적은 일본인 사람, 또는 이렇게 복잡한 외국인 둘이 한국에서 결혼하고 정착하려는 경우 등등 다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한 사례들이 생겨날 것이다.
한국에서 복잡해진 경우가 이미 눈에 띄게 보이는 것도 있다. 바로 '핸드폰 요금제'
이전에는 몇 개의 통신사가 3개 정도의 다른 요금제를 갖고 있으면 그중에 골라서 쓰는 것이 전부였지만 요즘에는 알뜰폰이라는 것도 나오고 요금제도 이것저것 복잡한 것이 많이 나왔다.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질수록 더 많이 요금제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독일 같은 경우는 이미 큰 통신사의 통신망을 빌려서 쓰는 수많은 작은 회사들이 존재하고 요금제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써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나랑 같은 데이터량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친구가 나의 3분의 1도 안 되는 요금을 내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한국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만큼 생겨나는 이 '케바케(Case by Case)' 현상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숙제로 보인다. 왜냐하면 '케바케(Case by Case)'의 사회가 심화될수록 점점 계층화 계급화가 심화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대로 잠자코 사는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케바케의 단점은 결과를 예측하거나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 인생을 계획대로 이끌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류에 도장 한번 받으러 갔다가 하루를 통으로 쓰고 기분까지 잡치는 일이 허다하니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공과금, 세금, 부동산 계약, 직장내의 대우등등 더 중요하고 큰 손해들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루하루 계획했던 중요한 일들이 무너지고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몇 번 보다보면 내 생활 자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점점 하루에 내가 할 수있는 일을 줄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목표 - 우체국 가서 택배 붙이기' 끝! 잠자코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