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늘 이런 식이다
독일에 오자마자 거주했던 학생 기숙사는 방만 따로 쓰고 주방과 화장실, 샤워실은 공용이었다. 공용주방에는 티비가 하나 있었는데, 저녁이면 몇몇 학생들이 소파에 앉아 뉴스나 축구 경기 같은 것을 보곤 했다. 독일어도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인 나는 사람들이랑 말을 섞기가 무서워서 몇 개월간 티비도 못 보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러 들어간 주방이 절간처럼 조용한 게 아닌가. '나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티비나 좀 볼까...'하고 채널을 돌리다가 문화 충격에 적잖이 놀랐다.
말짱하던 프로그램들이 나오다가 난데없이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 가린 야한 여자가 나와서 민망한 몸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070 - xxxx - xxxx 같은 번호를 야하디 야한 목소리로 쉬지 않고 읊어댔다. 전화하라는 거다. 깜짝 놀란 나는 갑자기 누구라도 들어오면 오해라도 받을까 빛의 속도로 채널을 돌렸다. 한국으로 치면 MBC 하고 KBS사이에 그런 채널이 나오는 거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게 무슨 특별한 셋톱박스(Set-Top Box)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정집에도 똑같은 채널이 나온다는 건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어른은 그렇다 치고 애들은?' '애들도 다 볼 수 있는 채널에 어른이 봐도 민망한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가 나와도 되나?'
독일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런 채널들이 하루 종일 나오는 건 아니고 밤 10인가 11인가부터만 나온단다. 그리고 독일 초중고 학생들은 보통 그전에 다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좀 보면 어떤가'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독일의 성(性) 문화라는 것은 그런 식이다.
베를린의 흔한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런 곳에 이런 게 있어도 되나 하는 광고판이 보인다.
성인이라면 딜도(Dildo)가 뭔지 들어는 봤으리라 짐작한다.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한 자위기구이다.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그 성인기구 광고가 말짱한 길거리, 아니 한국으로 말하면 동네 꼬마 애들도 지나다니는 집 앞, 또는 뱅뱅 사거리 같은 대로변에 떡하니 세워져 있는 것이다. 민망한 로고(Logo)와 문구와 함께.
길을 지나다니는 아이들이 이런 거 봐도 되나? 봐도 된다. 성(sex)에 대한 광고지만 그 수위가 지나치지 않고 만약 아이들이 부모님께 저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의 교육방식에 따라 나이에 맞게 설명해 주면 될 일이다. 적어도 독일의 분위기는 그렇다.
베를린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담배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이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담배 보다 쿨(Cool)하게 사진 찍기 놀이를 하고, 직접 담배를 만지면서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본다. 겉은 이쁘지만 속은 썩은 사과를 보여주며 이쁘게 생긴 전자담배의 유해성도 알려준다.
https://www.zdf.de/nachrichten/ratgeber/gesundheit/rauchen-praevention-vapes-e-zigarette-100.html - ZDF 독일 제1의 공영 방송
한국에서는 영상에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면 어른도 못 보게 블러(blur) 처리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에서 아이들에게 소위 어른들의 세계 - '쾌락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를 교육하는 방식은 쉬쉬하고 감추는 것이 아니다. 있는 사실을 없는 일처럼 안 보여줘도 아이들은 어느 순간 그 나이가 된다. 금지된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경험하고 싶어지는 나이. 그런데 그전까지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사실'을 배우지 못하고 친구들끼리 '환상'만 배운다면 그들은 처참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평생 잘못된 '환상'과 '왜곡'을 갖고 어른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결과다.
독일에서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신체와 성에 대한 상식과 더불어 일상에서 쉽게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비하는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그 내용이라는 것이 한국 기준으로 보면 꽤나 적나라하다.
아이를 갖는 마음 자세나, 많은 성폭력이 근친 간에 일어난다는 사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심지어 7학년이 되면 콘돔의 사용법과 피임도 배운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의 Lernentwicklungsgespräch - '교육 성장 면담(?)' 시간의 일이다. 아내와 나.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부 담임선생님 그리고 딸. 이렇게 5명이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주로 선생님들과 아이가 얘기를 주도하고 학부모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이 날 어떻게 학교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 즈음 딸아이가 말을 꺼냈다. '요즘 성교육을 받다 보니까 애들도 맨날 섹스(sex) 얘기를 하고, 이상하게 생긴 나무만 봐도 '남자거 같다, 여자거 같다'하면서 장난을 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자주 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다.' 이에 선생님은 '그 나이에 점점 성적으로 관심이 생기고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하나도 걱정할 것 없지만 너무 자주 혹은 별 이유도 없이 자꾸 그런 생각이 나면 선생님한테 다시 얘기해 줄래.'라고 응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과 담임 선생님의 입에서 섹스(Sex)라는 말이 몇 번이고 자연스럽게 나왔다.
물론 다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주위에서 좋은 어른들이 아이의 성향과 나이에 맞게 수위를 조절해 주고, 적절한 설명과 교육을 해주지 못한다면 때론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본인들이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일부의 어른들은 '애들도 어차피 크면 다 알게 돼!'라며 아무런 여과 없이 쾌락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욕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한 손에 갖난 아이를 안은 엄마가 다른 한 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걷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성적 담론과 음담패설은 다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해야 하는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솔직함'보다 '천박함'에 가깝다. 그것은 때로 그대로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을 굳이 끌어내려 싸구려 욕망으로 추락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쾌락'이라는 세계를 억지로 감추는 것보다 올바로, 하지만 섬세하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 더 맞는 교육방식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일은 늘 그런 식이다.
이것이 독일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괘락과 욕망을 컨트롤해야 하는지'알려주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