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위험해
한국 사람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얘기인즉슨 길이나 지하철에서 몸을 부딪치거나 발을 밟거나 해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은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왜 사과를 하지 않는가?
1. 한국에는 '매너'가 없다.
독일에서는 길에서 조금만 신체접촉이 있어도 쉽게 'Entschuldigung(엔트슐디궁)' 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때에 따라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Entschuldigung' 대신 가볍게 'Sorry'나 손만 살짝 들어서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진짜 미안한 감정이 있는 걸까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다. 사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살짝 부딪친 걸로 굳이 미안한 감정이 들 필요도 없다. 이건 그냥 '매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서양에는 '신사의 매너'라는 것이 있다. 굳이 외국에서 살아보지 않았더라도 차에 동승하는 여성을 위해 문을 열어준다던지, 레스토랑에서 의자를 빼주거나 외투를 받아주는 장면은 영화에서 종종 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주로 귀족의 문화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같은 정도로 지키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때에 때라 다르다. 예를 들면, 남편이 매일 같이 아내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빼주어야 한다면 불편해서 어디 살겠는가. 그러나 특별한 날, 특별하게 차려입고 나들이를 가는 것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사회에서 합의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본 매너'라고 생각하는 정도는 있다. 식사 중에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것,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 정도는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매너다. 또 레스토랑에서 직원을 절대 소리 내서 부르지 않는 매너도 있다. 웨이터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눈에 불을 켜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살짝 손을 들어 불러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역시 합의된 '매너'가 있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는 건물에 드나들 때 가까이 다른 사람이 따라오거나 하면 가볍게 문을 잡아두고 뒷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다. 대중교통에서 짐을 들었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 노인이나 유모차가 보인다면 아무도 불평 없이 그들을 돕고 기다린다. 한국처럼 눈치를 주거나 행여 '거 빨리빨리 좀 갑시다'따위의 말을 했다간 아마 쓰레기 중에 쓰레기 취급을 받을 것이다.
2. 한국에는 'Sorry'가 없다.
한국에는 유감을 표시하는 가벼운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얘기하면 '죄송합니다'나 '미안합니다'라는 표현은 무게감이라는 것이 너무 크다. 영어로 'Sorry'는 뉘앙스에 따라 아주 가벼운 유감의 표시부터 정말 미안할 때까지 다 활용이 가능한 단어다. 독일어 'Entschuldigung(엔트슐딩궁)'역시 'Sorry'만큼은 아니어도 상황에 따라 '좀 지나갈게요'정도로 쓸 수 있는 가벼운 단어가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말 미안한 감정은 1도 없지만 일종의 매너로서 할만한 말이 없다는 것이다. '실례 좀 할게요'가 의미상으로는 더 맞는 것 같지만 '실례하겠습니다'같은 표현은 뭔가 문어체가 돼버렸는지 잘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3. 한국에는 '공간'이 없다.
과장 조금 보태서 미국은 차가 없으면 옆집 놀러 가기도 힘들다고 한다. 독일도 도시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처럼 사람들이 빠글빠글 모이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독일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템포가 빠른 도시 베를린도 서울에 비하면 여유롭기가 신선 놀음이다. 그만큼 생판 모르는 타인이 길에서 접촉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 하지만 서울을 어떤가. 출근길에 대중교통에서 나와 접촉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서 모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가는 출근 전에 목뼈에 금이 갈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가 충분히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 접촉에도 절대 사과를 하지 않을 좋은 핑계가 된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심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서양과 같은 정도의 접촉에 같은 빈도의 'Sorry'를 할 수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사과를 할 줄 모르는 미개한 민족이고 독일 사람들은 '매너'의 민족인가.
'길거리에서의 가벼운 사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상대도 나도 진짜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로, 법적으로 책임질 만큼 큰 일도 아니다. 셋째로, 내가 '매너'있게 사과를 하면 상대도 기분이 좋고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된다. 독일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 보다 더 잦은 빈도로 사과를 한다는 것은 100%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그들은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1. 그들은 모르고 한 일에는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어린이 집 뒷마당에 나무를 심을 일이 있어서 학부모들과 함께 모였다. 사과나무를 심어야 했는데, 수목(樹木)을 잘 아는 학부모 위주로 우선 땅을 깊게 파고 그 땅을 최대한 무르고 촉촉하게 만들기로 했다. 가까이 보이는 수도를 찾아 그 뒷마당까지 호스를 빼서 한참 물을 주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그 수도호스는 우리 어린이 집 소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여성분은 왜 허락도 없이 남의 물과 물건을 막 쓰느냐고 했고 한국이면 학부모들이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이라고 바로 말을 이어갔을 상황이다. 그러나 아무도 '미안합니다. Entschuldigung.'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전혀 당황하거나 미안해하지 않고 정말이지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아 우리 몰랐어요.. 어쩌고저쩌고..'라며 유연하게 말을 이어가고 결국 수도를 쓰는 허락까지 받아냈다. 물론 어린이집과 뒷마당을 같이 쓰는 건물의 사람들이라 더 호의적이었던 것도 있었지만, 양측 모두 '모르고 한 일인데 뭐 어때'라는 숨겨진 합의가 보이는 대화였다.
물론 상대가 모르고 한 일로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인데 사과를 듣지 못하면 화가 날 때도 있다.
독일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면 영수증을 꼭 잘 확인해야 한다. 실수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세일 상품이 세일가로 안 찍혔다던가. 같은 물건을 두 번씩 계산했다던가. 거스럼 돈을 제대로 안 줬다던가 등등의 일이 흔하게 있다. 그렇게 영수증을 확인하고 '어! 이거 아닌데'하면서 다시 계산대로 가면 그때부터 기분이 나빠야 한다. 당신이 계산원을 함부로 불렀다간 아주 기분 나쁜 표정과 말투로 "계산하는 거 안 보여? 기다려."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 계산원이 당신을 다시 "뭔데?"라고 부를 때까지 주인을 기다기는 개처럼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그때 당신은 "이게 이렇게 잘못된 것 같은데..."라고 말을 할 것이다. 이때 그 계산원이 '아니'라고 우기면 그때부터는 큰 싸움이 되는 것이고 '맞다'라고 해도 절대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아! 씨발 이게 왜 이렇게 됐어!"라면서 혼자 욕을 하면서 "카드 다시 줘봐!"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그러면 '지가 잘못하고 왜 이럴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독일이다. 그들을 모르고 한 일에는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2. 그들은 책임을 질 일이 생길까 봐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광고에 나와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회사에서 제공할 수 없을 때 흔히 "고객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자신들이 한 광고를 보고 먼 길을 찾아왔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을 내서 전화를 하거나 문의를 했으니 불편함을 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런 경우에 절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유감스러운 눈치도 없다. 본인이 상품 재고나 서비스를 관리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게 내 잘못이야?!'같은 마인드다. 괜히 미안하다고 했다가 물고 늘어지면 큰 일 아닌가. 이 정도 일이라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잘못을 할 때도 절대 사과는 하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서류를 책상 구석에 두고 출산 휴가를 가버린 공무원 때문에 엄청나게 큰 손해를 볼뻔했던 경우에도 사과를 듣지 못했고, 큰돈을 두고 수리를 맡긴 집을 엉망으로 고치고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A/S를 맡긴 이어폰을 물어보지도 않고 버리고서는 훤씬 싼 제품을 그냥 보내버린 대형 오디오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하면 도리어 큰소리치는 쪽은 그쪽이다.
3. 그들은 사과대신 핑계를 댄다.
공간을 운영할 때 월세로 사무실을 쓰던 독일인 친구가 있었다. 무려 7년 정도 공간을 함께 썼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 없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친구로 남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사과를 하지 않아서다. 어느 때부터 연락이 되지 않던 이 독일인 친구는 무려 4개월간 월세를 내지 않고 잠적했다. 사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어서 문자도 남기고 메일도 쓰고 했는데 답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장문의 문자가 왔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지금까지 이 공간에서 사무실을 쓰면서 불편하고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장황하게 보내온 것이다. 나는 이 장황한 문자의 행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는 밀린 월세를 낼 생각이 없고, 법적 분쟁에 들어가면 유리가 고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은 월세를 안 내도 좋다. 그러나 7년이나 좋은 관계로 지냈고, 너를 걱정하고 했는데 사과를 하지 않고 핑계를 대는 것이 유감이다. 그냥 빨리 나가라."라고 답장을 했고. 그렇게 그는 원하는 바를 이뤘다.
이것이 바로 독일인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가볍게 매너를 지키는 것 이상에는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사과가 법적 분쟁에 가서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봐도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핑계라도 대면서 자신을 항변한다. 때로는 유치해서 말도 안 나올 정도다. 한 친구는 집을 지었는데 변기가 흔들려서 시공사에 항의했더니 "너네가 변기에 앉아서 엉덩이를 흔들거리니까 그러지!"라며 무상 수리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독일과 한국의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
사소한 일에 가벼운 사과의 제스처도 할 줄 모르는 한국과 진짜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 독일의 차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다. 한국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했다면 고개를 숙이고 감정적인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비굴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하니 내가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면 길거리에서 남 앞에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일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만 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법적으로 서류로 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적으로, 흔히 경제적으로 책임질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일단 사과를 하지 않고 유치하게라도 핑계를 대는 것이다. 그러나 웬만한 일에 웬만한 사람이 법적 분쟁까지 갈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렇게 상황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종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