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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Feb 02. 2024

20년 동안 독일에서 인종차별 받으면 생기는 일 II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일상의 인종 차별은 ‘무지(無知)’로부터 나온다.


문제의 원인이 누군가의 ‘무지(無知)’에 있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을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지(知)의 상태로 바꾸면 된다.


그럼 한국인으로서 또는 아시안으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까. 그것이 일상의 인종차별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명확하다.


“우리는 너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났어. “


맞다. 유치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다. 작고 약하고 무식한 아시아에서 온 꼬맹이 취급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무시해도 되는 사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무시받지 않기 위해 가장 강력한 방법은 실력을 인정받고 권력을 갖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라고 하면 누구나 한국인을 떠올린다던지. 세계의 정치권, 경제계의 거물들 중에 한국인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시대가 온다면 아마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군다나 길거리나 상점, 관공서에서 스치는 인연들에게 나의 실력과 지식과 인품을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상의 인종 차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루기 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무지를 넘어 지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편견’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사실 편견이 없어지기까지는 모든 종류의 사람과 모든 형태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다. 규정할 수 없고, 패턴화 할 수 없는 다양성이 있을 때만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키가 아주 큰 사람부터 아주 작은 사람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부터 집 없는 홈리스까지, 엄청난 천재 학자부터 못 배운 사람, 세계적인 가수나 배우뿐 아니라 심지어 유명한 포르노 배우도 있는 나라 출신의 사람을 만나면 편견을 갖기가 어렵다. "오늘 여기 '미국 사람'이 올 겁니다."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오는지 감이나 오는가?


그렇게 보면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방법 역시 다양할수록 편견을 없애기에 좋은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귀족처럼 행동하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귀족 타령인가 하겠지만 유럽에는 아직도 귀족들이 산다. 그리고 역사와 문화 속에 귀족의 정신과 태도가 살아 숨 쉰다. 길 이름이나 동네 이름도 귀족 혹은 왕족의 가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느끼는 귀족의 느낌이 있다. 사실 귀족이라기보다 ‘아…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 중세 시장통 같은 독일의 길거리에서도 클라스(Klass)를 가진 사람들의 표정, 눈빛, 말투, 매너는 다르다.  


그들은 늘 여유가 넘치고 자신감이 있다.


독일인들의 디폴트 값은 차가움과 냉정함이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차갑고 냉정해야 어른스럽다고 생각한다. 처음 본 사람 혹은 안 친한 사람 또는 안 친할 사람과 희죽희죽 웃으면서 얘기하는 것은 꼬마애들의 태도라 여긴다. 물론 아이의 학교에서, 친구의 파티에서처럼 나와 어떤 중요한 연이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태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상황에서 차별이라고 느낀다. 하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갑자기 욕을 먹거나 시비가 붙을 때. 또 다른 하나는 문의나 항의를 해야 하는데 상대가 너무나 차가운 경우다.


첫째로, 길에서 무례한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싸움이 아니다. 고고하게 무시하거나 친히 알려주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가 너무 가만히 있으니까 더 무시한다고 생난리를 치라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그런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1차원적인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친구 중에 너무 예민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으면 다들 그 친구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은 하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존경하지는 않는다. 독일에서는 주로 터키와 러시아인들이 그렇다. 전쟁으로 인해 이 두 나라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독일에 살게 되었고 차갑고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강함’을 택했다.


몇몇의 터키, 러시아계 덩치 크고 쎈 놈들은 독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더 진상짓 혹은 철판짓을 한다. 그들은 고급차를 타고 명품옷을 입고 도로 한쪽을 막고 차를 세운다. 차에 기대어 여유 있게 얘기하면서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독일 사회에 대한 복수심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그들을 수준 높은 사람들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나라의 이름들을 무식하고 천박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렸다. 사실은 충분히 지적이고 품격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강 대 강'은 아시안들에게 잘 맞지 않는다. 우선 우리는 생긴 게 위협적이지도 않고 실제로 위협적인 삶을 사는 경우도 거의 없다. 나름 한국에서 인상이 더러운 취급을 받았어도 여기서는 '동안의 아시안'이 된다. 아마도 90년대 미국 2세나 이민자들이 헬스를 많이 한 이유도 ‘어린애 취급’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마약에 돈세탁에 마피아의 일원으로 사는 한국인이 있다면 모를까 우리가 소리 지르고 난리를 쳐도 무섭기보단 그냥 무식해 보일 확률이 크다.


맞불 작전이 우리에게 안 맞는 또 다른 이유는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멘털’ 때문이다.


만약 독일 사람들처럼 길거리에서 갑자기 기분 나쁜 말을 주고받고, 때론 쌍욕도 하고, 비아냥거린다고 해도 돌아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갈길을 갈 수 있으면 괜찮다. 그러나 필자는 많은 경우 아무리 잘 싸워서 내가 이긴 것 같이 끝난다 해도, 그 찝찝하고 저질이 된 것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 화에 언급한 ‘니하오’ 케이스를 보자.


‘니하오~’ 거리는 놈의 면전으로 달려가서 가장 무서운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인종차별이라고 지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여유 있는 표정과 걸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 좋다.


“너 뭐라고 했니?”


그럼 또 니하오 하면서 키득대는 놈도 있고, 갑자기 정신 차리고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놈도 있다. 그럼 이렇게 얘기를 이어 나가 보자.


“너네 니하오가 어느 나라 말인 줄 알아?” “너네 중국 말고 아는 나라가 없지?” ”안. 녕. 하. 세. 요. 자 따라 해 봐. “


이렇게 하면 거의 대부분 다 웃으면서 어눌하게 따라 한다.


”다음에 나 만나면 한국말로 해라 오키? “


라고 말하면서 쿨하게 자리를 뜨면 이미 주도권이 나에게 온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어눌하게 한국말을 따라 하면서 어느새 순한 양들이 되어있다.


물론 바쁜 길이면 그냥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면 된다.


두 번째로 상담이나 관공서에서 살벌한 얼굴로 나인(nein!)을 외치는 사람을 상대할 때. - Nein은 아니(no)의 독일어다.


독일 사람들이 차갑고 냉정한 표정과 말투를 어른의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주도권 싸움' 때문이다. 심지어 그냥 별 영양가 없는 스몰톡(small talk)을 하는 거 같아도 거기에 주도권 싸움이 있다. 누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지, 의견을 모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가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 굉장히 자기주장이 강해서 권위 따위는 안중에 없이 의견을 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단지 그 권력과 권위의 방식이 좀 다를 뿐 때로는 더 강력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주도권을 잡는 대화의 방식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결국 여기서도 최상위 포식자는 여유 있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언어를 잘하던 못하던 일단 자신감 있는 표정과 말투로 대화를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처럼 차가운 얼굴보다는 여유 있고 자신감 있는 미소가 도움이 된다. 그 사람의 표정이 얼음장 같고 단호해도 그 사람의 호흡에 나를 맞추기보다 내 템포로 그를 데리고 와야 한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너무 차갑고 빠르게 쏘아붙이면서 말을 한다면, 대답을 한 템포 쉬면서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표현을 꼭 해주고 질문에 대답한다. 그 후에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면서 대화의 주도권을 내쪽으로 가져온다. 간혹 가벼운 유머를 던지면 분위기를 띄울 필요도 있다. (독일에서는 1차원 적인 아재개그가 잘 먹힌다.) 필자는 이런 대화법으로 진짜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화가 난 것 같던 독일 사람이 어느새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친절해지면, 처음 얘기를 시작할 때랑 같은 사람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물론 개가 물어뜯을라고 하는데 대화를 시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에 따라 때로 '미친놈'이 되는 것이 좋을 때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귀족적 태도'를 갖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결국 모든 조건들이 더 나아졌을 때,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언가 품격이 다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명함만으로도 더 이상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타향살이가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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