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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Jan 25. 2024

20년 동안 독일에서 인종차별 받으면 생기는 일 I

무식하면 용감하다  

제도적 인종차별을 존재하지 않는 시대. 그러나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물론 네오나치 (Neo-Nazi) 같은 과격하고 비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직도 있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종차별적인 사고(思考)를 하고 있다.


복장까지 갖추고 노는 환자들 Neo-Nazi / 이미지 출처 :  bild.de

자신이 어떤 인종인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은 인종을 구분하고 우열을 나눈다. 생존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카테고리를 만들고, 패턴을 찾아내고,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단지 그 직관적 판단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더 노력하는 사람과, 그것을 그냥 믿어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 구분이라는 것은 주로 의식적이 아닌 무의식적 판단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직관과 감각을 절대적으로 신뢰를 하는 성향이 강한 서구권의 백인들에게 ‘차별적 사고’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굳이 인종차별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하는 모든 판단이나 구분 같은 것은 그가 갖고 있는 데이터에 기반한다. 직. 간접적인 경험들과, 그 경험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해석이 그가 생각하고 그가 행동하는 방식인, 그의 세계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양’의 ‘정확한 ‘ 데이터다. 우리가 사실과 동떨어진 정보를 얻거나, 양질의 정보라 해도 그 수가 너무 부족하다면 그 사안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선택일지 몰라도 때론 좋은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가진 정보의 양과 질에 관계없이 그 상태 그대로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상에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차별 - 마이크로 레이시즘(Micro-Racism)은 ‘무지(無知)’에서 나온다.




당신은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물론 미국에 거주 중이거나 유학을 했다거나 특별한 연이 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로 생각해 보자. 무슨 주가 어디 붙어있는지, 동부에는 어떤 곳이 가볼 만한지, 서부의 특징은 무엇인지, 각각 다른 주들은 법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아는가? 아마 잘은 몰라도 뉴욕, 워싱턴, 시카고, 시애틀 말해주면 웬만한 도시들을 알 것이고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정도는 들어 봤을 만하다. 그리고 주마다 법이 다르다는 것도 새로운 정보는 아닐 듯하다.


이번엔 유럽으로 가보자. 유럽 국가 27개국 중 몇 개의 국가를 말할 수 있나? 유럽의 국경은 언제부터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됐을까? 독일과 인접한 국가들은 어떤 국가들인가? 독일의 주(Bundesländer-Stadtstaaten) 이름을 몇 개나 아는가? 도시는? 미국인과 독일인과 프랑스인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아마 유럽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미국을 얘기할 때보다 좀 더 막막했을 수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미국 옷을 입고 미국 신발을 신고, 미국 커피를 마시고, 미국을 영화를 보면서 정확하진 않아도 알게 모르게 주워들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유럽에 대해서는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거나, 경험을 하면서도 그것이 유럽의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 동남아시아권은 어떤가? 아프리카는? 아마 관련 지식이 전무(全無)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베트남이나 태국 도시 이름을 몇 개나 아닌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어와 태국어를 구분할 수는 있나? 캄보디아 미얀마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아프리카는 뭐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우리 사정이 이 정도면 세계의 패권(覇權)을 한 번쯤은 쥐락펴락 해봤던 나라의 사람들은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이 당연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굳이 아시아를 경험하거나 소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시아는 그냥 ‘중국’이다. 물론 일본도 일찍부터 세계로 진출해서 좋은 이미지라는 게 있지만 그중 제일 알만한 것이 ‘스시(Sushi)’ 정도나 될까… 특별히 취향이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편적으로는 일본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을 것이다.  당연히 아시아에 어느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문화라고 할만한 것들은 오래된 다큐멘터리에서 흘려봤던 것 정도 알면 어디서 잘난 척 좀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제 당신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니하오~ 니하오~’ 라며 키득거리는 이유를 알겠는가. 아시아에 대해 아는 거는 ‘니하오’뿐인데 니하오를 쓰는 사람(아시안)이 지나가니까 신이 났을 거다. 중국어도 안다고 잘난 척도 좀 하고 말이다. 십수 년 전 한국에서도 백인은 다 미국사람이었다. 차별적으로 코쟁이라는 표현도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몇몇 노인이나 아이들은 지나가는 백인에게 "와 미국사람이다!! 헬~로우~ 헬~로우~"를 하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는 백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설사 그들이 미국사람이 아니고 네덜란드인이어도 그렇고, 아무리 헬로거리며 키득거려도 그렇다. 몇몇 사람들은 영어는 세계공용 어니까 모르는 사람 한데 영어 쓰는 건 다른 얘기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물론 모든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어떤 '니하오'는 친밀감의 니하오'고 어떤 '니하오'는 '비아냥의 니하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나'다.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모든 상황을 결정한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다. 그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었을지언정 이미 거의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갖고 리드를 해온 것은 백인들이었다. 그래서 백인들은 특권을 갖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권력을 쟁취하고 수호하는데 관계가 전혀 없지만, 그냥 그런 피부색과 외모를 가진 이유만으로 갖는 특권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모국어가 된 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글로벌한 삶을 사는데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를 노력도 없이 얻게 된 것과 같다. 지금의 영국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화한 적이 없지만 그 혜택은 다 받고 사는 것이고, 지금의 독일사람은 전쟁과 침략을 위해 개발된 온갖 기술과 문화산업의 덕을 보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애써 증명할 필요가 없다. 국적과 인종이 그들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아시안들은 스스로를 애써 증명해야 한다. 눈치 없는 그들에게 티 나게 증명해 줘야만 '무지한 그들'이 아시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음 인지할 수 있다. - 사실 그래도 눈치를 못 챈다 -  




그리고 독일에서 나를 증명하는 방식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를 증명하는 것이 좋을까?


다음에 이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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