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을 단순히 비교하면 안되는 이유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독일 사람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독일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독일 사람들은 차갑다?
독일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독일 사람들은 근검절약한다?
독일 사람들은 진짜 그럴까? 맞는 말도 있고 헛소문도 있을까? 미안하지만, 무슨 얘기를 해도 다 틀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 사람은 이래‘라는 말과 독일 사람이 생각하는 '독일 사람은 이래'라는 말의 기준이 같지가 않다.
'한국인'과 '독일인'에서 '한국 ↔️ 독일'만 교차하면서 절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기후와 사회제도,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서 같은 조건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독일 뿐 아니라 소위 강대국, 선진국 또는 그냥 땅덩이가 큰 나라들과 대한민국을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것은 '다양성'이다. 일단 장점이나 단점으로써의 다양성을 얘기하기보다 말 그대로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무슨 나라 출신인지, 어떤 피부색을 가졌는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지, 수입, 근무시간, 근무 패턴, 같은 도시 내의 지역별 분위기, 심지어 키가 작은지 큰지, 얼굴이 작은지 큰지, 이쁜 건지 아닌 건지, 더 나아가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까지...
예전보다 외국인의 비율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큰 틀에서 전 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다수가 공유하는 '같은 유행'과 '같은 목적'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두 유 노우 싸이"(Do you know PSY?)에서 "두 유 노우 비티에스" (Do you know BTS?)까지
한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글로벌하게 유명한 사람이 가수 싸이였던 적이 있다. '강남 스타일'이라는 곡이 유튜브에서 대박이 나면서 싸이가 뭐 미국 어디를 초대받았네 누구랑 파티를 했네 등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외국인을 만나면 뜬금없이 "두 유 노우 싸이?"를 시전 하며 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또는 진짜 싸이가 그렇게 유명한지 확인하는 것을 비아냥 거리며(그래서 꼭 한국어로 써야 한다) 나온 밈(meme)이다.
(나도 그 당시 독일 라디오에서 피트니스에서 '강남 스타일'이 나오면 타향살이에 찌그러져있던 어깨가 살짝 펴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계보가 이어져 BTS가 끝판왕이 되고, 이제는 K-Pop 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온갖 미디어 컨텐츠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의 운동선수 그리고 한식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더 많은 인지도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결론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 양상은 한국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베를린에서 집 앞에 나가 무작위로 BTS를 아냐고 물어보면 아마 아주 적은 확률로 "오! BTS 당연히 알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도 축구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가 독일이다. 보통의 초등학생들도 남녀구분 없이 축구에 관심이 많다. 유명한 축구 클럽 유니폼을 입고 학교에 오는 아아들도 많고, 분데스리가(Bundesliga)나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 얘기를 맨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손흥민, 김민재의 존재감은 우리의 생각만큼 크지 않다.
이유는 첫째로, 미디어의 사회 장악률의 차이.
독일의 미디어 장악률은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 내가 그 사안에 관심이나 관계가 딱히 없는 사람이라면 아예 영향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예전에 리어카에서 가게(예전에는 가게에서도 스피커를 길로 해놓고 음악을 크게 틀어놨음)에서 음악 나오던 시절이 기억나는가?
내가 듣기 싫든 좋든 상관없이 유행하는 음악은 길거리를 걷는 내내 들어야 했다. 그리고 공중파만 있던 시절 유행하는 프로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나 학교에서 그 프로나 그 연예인을 모르면 외계인 취급을 당하곤 했다. 한국도 이제는 다양한 채널과 인터넷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생활이 어느 정도는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적은 인구와 작은 땅덩이, 그리고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미디어의 사회 장악력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게 꼭 단점은 아니다.)
둘째로, 각자의 취향대로 산다.
첫 번째 이유와 관계가 깊다. 일단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절대적인 기준이 한국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어떤 이유에서건 갖게 된 자신의 취향을 유지하면서 살기가 수월하다. 한국에서는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혹은 미디어를 통해서든 '너는 왜 옷을 그렇게 입냐', 오빠를 머리 기르지 마라', '누가 요즘에 그런 거 하나', '그런 거 왜 좋아하냐'따위의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게 꼭 장점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신경 쓰고 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다. 싸이가 됐건 BTS가 됐던 K-Pop에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고, 축구에 관심이 없으면 손흥민이고 김민재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한 예로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을 하고 재즈 클럽에 갔는데 아무도 축구 얘기를 안 해서 놀랬던 적이 있다.
셋째로 인터넷이 여전히 구리다.
2006년 함부르크 기숙사에서 개인에게 제공되는 1달치 사용 용량이 2기가였다. 속도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엄청나게 느렸고 2기가를 다 쓰면 구글 페이지를 읽어내기도 힘든 속도로 떨어졌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관청이나 가게에서 '검정 화면에 녹색 글씨가 쓰여있는 PC'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한국은 벌써 개인이 UCC를 만드는 것이 붐이었고, 보고 싶은 영상을 다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고속 인터넷의 시대였다. 독일은 아직도 종이로 된 서류, 종이로 된 편지가 매우 중요하다. 아직도 중요한 일처리들은 메일이나 전화보다, 편지나 팩스를 이용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독일도 수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 (Industrie 4.0)에 맞춰 디지털화(Digitalisierung)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난리를 좀 쳤지만 아무래도 무리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일부 젊은 층을 제외한 독일 사람들은 아직 엄청난 양질의 인터넷이나 자동화된 시스템을 요구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절실하지 않다면 그 분야에 돈이 들어올 리 만무하고 발전의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유럽여행을 와서 세계적으로 떴다는 한국사람을 물어봤는데 그들이 모른다고 실망하지 마라. 아마 그 사람이 당신이 모르는 환경운동가나 동물애호가 이름을 줄줄이 알지도 모른다. 아무리 유명해도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