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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Feb 27. 2020

To  Be  or  Not  to  Be?

To  Do  or  Not  to  Do?

모조리 다 망했다.


클래식이고 재즈고 락이고 팝이고 다 자기들 씬(Scene)이 망했다고 난리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미술계, 공연계, 문학계 등등 문화/예술이라 할 만한 것들이 다 망했단다. 그러고는 임금 체불, 대기업 횡포, 지원금 부족, 예술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적 인식 등이 없어지면 다시 부흥기가 올 것처럼 남 핑계대기에 바쁘다.  


모조리 다 망했다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티켓도 안 팔리고 음반도 안 팔려 씬은 죽어간다는데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진다. 장르를 불문하고 과거에는 없던 음악 동호회들이 넘쳐나고, 길거리에는 버스킹을 하는 예비 뮤지션과 이미 뮤지션들이 장사진을 쳤다. 온라인은 더 하다. 꼭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음악을 올리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수 많이 사이트들이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요즘 누가 책 읽냐고 할 정도로 출판계가 죽었다는데 브런치 잘 되는 거 봐라. 출판계가 죽기 전에도 내 주위에 글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봐라 나도 개나 소나 글 쓴다고 이렇고 있지 않나.


영역을 불문하고 문화/예술계는 죽어간다는데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현실적 선택' 이면에는 '실행의 욕망'이 있다.



자, 가장 좋아하는 분야 하나를 떠올려 보자. 뭐든 좋다. 축구도 좋고, 음악, 미술, 문학, 유튜브든 뭐든.


당신은 그것을 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보는 사람이기를 원하는가?


그냥 보는 게 좋다고??


그럼 가상의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해 보자. 당신은 그 일에 맞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그리고 직접 그 일 하기 위해 쓰는 시간은 24시간 +@로 당신에게만 특별히 주어진다. 혹시 이 조건이 다른 선택에 도움이 좀 되었을지 모르겠다.


한 번뿐인 인생,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각자의 타고난 능력과 환경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예를 들어 축구를 엄청 좋아하는 의대생은 결국 의사를 하고 축구는 가끔 보는 걸로 만족한다. 그 선택의 이유는 '축구가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의사가 더 안정적인 직업이라던지, 축구 선수로는 성공할만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여전히 그의 욕망 속에 축구는 '보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다.


창작자 = 감상자  / 생산자 = 소비자

요즘 글쓰기 장르의 대세가 '에세이'다. 움베르트 에코 같은 글쟁이가 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도 '내 얘기'를 '내 말투'로 쓰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까. 음악은 어떠한가? '일렉트로닉', '힙합'등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로 만들 수 있는 음악이 대세다. '대세'라는 건 일종의 시대적 요구 일 가능성이 크다.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시대는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모두에게 창작자로서, 생산자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참조 https://brunch.co.kr/@mastermind/27


씬(Scene)이 망해가는 진짜 이유


첫째, 하는 즐거움은 보는 즐거움을 넘어선다. 직접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작업하기 바빠서 남의 작품 보러 다닐 여유가 없다. 자칭 예술한다는 사람들은 세계적 거장이나 스타의 공연이나 전시 또는 지인의 그것이 아니면 자기와 비슷한 정도의 듣보잡들의 무대에 관심이 없다. 더군다나 돈 내고는 절대 안 간다.


이쯤 되면 자칭 프로들은 혀를 찬다. 아마추어들이 어쭙잖게 하면서 똑바로 배울 생각을 안 한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이유다. 흔히 말하는 기존의 판이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의 판을 만들어서 놀기 시작하면서 창작자로서, 참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의 판에 가면 자신들은 여전히 관찰자이거나 계몽의 대상이 되는 기분. 조연이 되는 기분이 불편하다.

 

얼마 전 한 판소리 대가가 인터뷰에서 “대중화는 어불성설이에요. 대중화라는 건 그 시대 정서에 기반하는 건데, 그건 방탄소년단이 하면 돼요. 역사성 있는 예술은 그에 맞는 품격을 찾고 차별화하면 됩니다. 그게 저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대의 정서를 기반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그 유물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도 관심 없는 '역사성 있는' 고고한 예술의 '품격'과 '차별화'는 결국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 믿는 구석이 지원금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하다.  


대중화에 신경 쓴들 철학책이 잡지책처럼 팔리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가치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고 성향의 차이를 말하는 거다. 대중들이 고딕 코스튬을 청바지처럼 입고 다니는 세상이 올까? 생각해보니까 올 수도...


대중화에 신경 쓴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마치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의 내용을 바꾼다고 잘못 이해하는 예술가들이 참 많다. 그래서 '대중화'는 자존심에 스크레치라도 가는냥 기분 나쁜 말이다. 하지만 대중화는 작품을, 결과물을, 메시지를 바꾸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단지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다 현명한 방법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예술가의 영역이며 역량이자 덕목이다.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맨날 패는 부모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부모. 둘 다 뜻은 같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가.


주로 이런 흐름은 권력의 타성에 젖을 대로 젖은 역사와 권위를 갖고 있는 씬(Scene)에서 많이 나타난다. 역사와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원금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뜻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눈먼 돈이 움직이는 판의 중심에서 인정받은 예술가나 관계자들은 이기적이고 안일하여 판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이 계의 중심에서 약간 밀려나 원하는 만큼 또는 이전에 받던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씬이 망해가는 이유는 늘 지원금 탓이고 공무원 탓이고 비전문가가 행정을 맡은 탓이다.   


더군다나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예술가들은 자기가 있는 판의 시스템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알 수도 없다. 자신은 그냥 열심히 작업을 했을 뿐이고, 예술이라는 것은 참 솔직해서 언젠가는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품을 위해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기관, 더 나은 예술 신을 위해 나의 활동을 널리 알려주는 미디어, 훌륭한 예술가로서의 명예까지 오면 '왜 어떤 시스템 덕에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이 기회를 얻었는 가'에는 관심이 있을 수가 없다.


'자기는 상또라이에다가 어디서 굽신거린 적도 없고, 단지 하고 싶은데로 만들었을 뿐이고 하고 싶은데로 행동했음에도 자기를 인정했으니까 이건 내 예술을 이해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판을 이끄는 꾼들은 그 판에서 뭐가 잘 팔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술판은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사람들 데리고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매력적인 사람을 팔아서 장사하는 것이다. 좁은 관점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산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큰 시스템의 '마리오네트' 일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형식의 문화 예술 콘텐츠는 변화하지 않는 한 다 사라질 것.


기존의 기준에서 월등한 실력보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만함이다. 가치라는 것은 만드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준'이라는 것은 긴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가치일 뿐이며 그 역사 속에는 전쟁이나 계급, 서구/남성 중심적 사고 같은 힘의 논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기업과 기관, 세금으로 '수준 높은 우리들'만 지원해야 하고 아마추어들이 주제에 뭐 한다고 깝죽거리데 그 돈과 관심을 나눠야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온갖 외부 탓을 하면서 예술의 성벽을 더 높이 쌓는데 힘을 쏟는다. 하지만 이제 관객들 역시 같은 창작자이며 참여자이다. 더 높이 쌓은 성벽 안에서 씬은 더 망해가고 썩어갈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창작자, 프로는 특별하고 아마추어들이 가짜를 하면서 프로의 파이를 넘본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아무나 하는 것쯤으로 얏본다고 기분 나빠한다. 하지만 제발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냥 다 껴안고 함께 한 마당에서 놀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절대 밥그릇 뺏길 일 없다. 그렇게 한다고 절대 가치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다시 생겨나고 다 함께 더 재미있게 예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권한다.


이제 내려와서 변하는 세상을 보라. 그것은 지금껏 왕권에, 귀족에, 자본에, 권력에, 세금에만 의지해서 홀로 서보지 못한 자들의 갖는 두려움이다. 그곳을 벗어나야 진짜 예술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같이 하자!






   이미지 : https://pixabay.com/ko/photos/공상-삭제-표시-소-름-작곡-254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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