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의 시간, 첫 수확의 봄

찻잎처럼 가볍고 단단하게 2화

by 이소연 Teana Lee

사월. 하동의 봄은 다른 봄보다 바쁘다.

산은 연둣빛으로 물들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찻잎을 향해 있다. 나도 이맘때가 되면 가마솥을 닦고, 공장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부터는 잠은 사치다. 우전 수확이 끝날 때까지, 이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저녁이 되면,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찻잎을 들고 모여든다. 몸은 작고 손은 굽었지만, 찻잎을 따는 솜씨만큼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갈하다. 그분들이 내민 바구니 안에는 그날 하루 햇빛을 담고 자란 연둣빛 새싹들이 가득하다.

나는 작은 아이스박스에 바카스 몇 병과 요구르트를 챙겨 놓는다. 찻잎 값은 현금으로 준비한다. 그게 내 작은 예의였다. 어른들의 손에 직접 건네며 인사를 드리는 시간. 마치 그날 수확한 고마움을 직접 눈을 마주치며 전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때로는 차가 없는 어르신들의 집까지 저울과 현금을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비탈진 차밭을 오르내리고, 산 아래 작은 집을 두드리는 일들이 반복되었지만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고단하면서도, 뿌듯했다.

찻잎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수확 후 바로 덖고 비비고 덖고 식히고… 밤을 새우고 나면 손에는 탄 흔적이 남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게 맑았다.

그게 ‘첫 우전’의 계절이었다. 그 어떤 커피나 디저트보다도 짙고 은은한 향, 세상 어디에서도 똑같이 만들 수 없는 그 봄의 맛. 나는 그렇게 찻잎의 계절과 함께 자라났다.

언젠가, 그 찻잎을 마시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란다.

“참, 따뜻한 맛이 나네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또, 봄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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