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처럼 가볍고 단단하게 3화
덖음솥 앞에서는 조급한 사람이 오래 남지 못한다.
차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그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하동에서 전통차 기술을 익히며 나는 처음 '덖음'이라는 과정을 마주했다.
덖는다는 건, 갓 따온 찻잎을 뜨거운 솥에 넣고 찻잎 자체의 수분을 활용해 센 불로 볶아내는 작업이다. 불은 살아 있었고, 찻잎은 예민했다. 향이 순식간에 바뀌고, 덜 익은 잎은 금세 쓴맛을 남겼다. 첫 덖음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한 잔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처음 그 솥 앞에 섰을 땐 모든 것이 두려웠다. 불 조절은 어렵고, 찻잎은 섬세했으며, 무엇보다 손은 너무나 뜨거웠다. 조금만 방심해도 타버리고, 조금만 욕심을 내도 맛이 망가졌다.
어느 날, 스승님께서 내 손으로 덖은 차를 한 모금 드신 뒤 조용히 말씀하셨다.
"네가 급한 거야. 찻잎이 급한 게 아니고."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나는 늘 앞서가려 했고, 결과를 빨리 보고 싶었고, 실수를 줄이려 애썼다. 하지만 덖음솥은 그런 나에게 '천천히'라는 단어를 처음 가르쳐주었다.
덖음의 기술은 결국 '기다림'의 기술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손을 뻗는 것. 힘을 빼고, 온몸으로 타이밍을 느끼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끓는 솥 앞을 묵묵히 지키는 것.
찻잎이 탈까봐 서두르면 찻잎은 오히려 익지 않았다. 조급함은 언제나 제 맛을 망치고 말았다.
오랜 시간 덖음솥 앞에 선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실패해도 더 오래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속이 타들어가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불 앞에서 나를 탓하기보다 찻잎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도 어떤 선택 앞에 서면 나는 마음속에 덖음솥을 떠올린다.
때를 기다리는 뜨거운 시간. 결코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 그런 순간들.
차는 내게 그걸 가르쳐주었다. 기다릴 줄 아는 손에만, 온기가 깃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