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회복하는 글쓰기
나는 계약서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서를 검토하고 쓰는 시간에 잠식당한 나’가 싫다.
몇 달간 계속된 조항 검토, 말꼬리 하나에 담긴 의도, 신뢰와 이익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조목조목 정리된 활자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한 문장을 쓰는 데도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 와중에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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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은 마음을 갉고, 문장은 마음을 살린다
계약서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다.
반면 에세이는 진심을 드러내는 언어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매일 헤맸다.
정확해야 하지만 유연하지 않은 계약서의 문장들,
그 아래 감춰진 이해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수치로 환산되고 조항으로 분해됐다.
그러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인의 이야기, 나의 기억, 허브 한 잎에서 출발한 감정.
이야기를 쓸수록 내 안의 굳은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계약서에 지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쓰는 글에서 위로받는
아이러니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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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진심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할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나의 ‘싫음’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왜 나의 ‘좋아함’조차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자기 검열(Social self-censorship)’이라 부른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 판단, 평판이 두려워 자기표현을 스스로 제한하는 현상이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거나, 오랜 시간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검열은 더 강해진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진심조차 오해받는 사회’를 살아간다.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과잉 해석되고,
마음을 다해 전한 말이 “전략적”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선의를 보여주는 것도,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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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나를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나의 기호, 나의 생각, 나의 불안과 회복을 글로 옮긴다.
왜냐하면 일기장에만 적어둔 나보다,
누군가와 공유되고, 공감받는 ‘기록된 나’가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쓸수록 알게 된다.
사람들은 나의 진실을 모두 좋아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 진심에 다가오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여전히 표면적인 행동을 가식이라 의심하겠지만,
그런 시선이 나의 진실을 퇴색시키진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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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을 보여준다는 건, 사실 아주 강한 일이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말했다.
“진정한 용기는 취약함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는 강한 척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실제로 강한 사람은 자신의 불완전함과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도 계약서를 쓸 때면 두통이 오고,
계약서 문장을 다듬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차를 우리는 시간,
다 쓴 글을 저장하는 시간 속에서 나를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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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결국, 나를 회복하는 방식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젠가 삶을 다시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처 난 마음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가기보다,
한 문장씩 꺼내어 마주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계약서가 나를 지치게 했다면,
글쓰기는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들어준다.
나는 오늘도 진심을 담아 쓴 글 한 편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내 편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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