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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Jan 18. 2021

동네 커뮤니티에 재미있는 제안이 올라왔다.

익명 상담소에서의 대화, 모르는 이의 고민에 대답하다. 

동네 커뮤니티에 재미있는 제안이 올라왔다. 


직장을 다니면서 저녁에는 펍을 운영하시는 분이었는데 그 공간에서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모임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야심차게 펍을 시작해서 밤낮으로 일하는데 생각만큼 수익이 안나서 몸과 마음이 좀먹히고 있다는 고민을 가진 그 분은 자신의 고민이 너무 무거워 남들과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공간은 참 예뻤다. 장사가 안된다는 펍에  손님아닌 손님으로 앉아 있는게 괜히 미안하기도 했지만 프로그램은 간단했고 우리 모두 빠르게 몰입했다.


1. 참가자들은 장소만 알고 모인다. 

2. 각자 자신의 고민을 종이에 적어서 제출하고 운영자가 그 카드들을 섞어서 차례대로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3.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그 고민에 대해서 해주고 싶은 말들을 진심을 담아 해주는 것이었다. 


누구의 고민인지는 모른 채로 사람들은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익명인 채로 깊은 고민을 나눈다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말 딱 고민만 나누고 서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의 일렁거림이 집으로 오는 내내 멈추지 않아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키고 오늘 나왔던 고민과 사람들의  이야기 중 몇가지를 정리했다. 

#. 고민과 이야기들


Q. 고민 1
늦은 시작

(이렇게 단어로만 적혀있었다.)


As. 늦게지만 시작했다는 말인지, 늦게라도 시작하고 싶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용기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데 늦었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한다는 건 더 힘든 거잖아요.

무엇보다 그게 무엇이든,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너무 예쁜 마음이잖아요.


시작은 그냥 시작이 아니에요. 

실은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수많은 생각과 망설임이 있었을 테죠.


그래서일까요. 늦은 시작, 이라는 말에서는 모종의 걱정과 불안이 함께 읽혀요. 

그건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 같아요.

그 일이 너무 소중하니까 걱정되고 불안한거 겠죠. 소중하지 않다면 사실, 쉬워요. 힘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소중함을 꼭 지켜냈으면 해요. 힘들게 낸 용기로. 


Q. 고민 2
불안한데 뭐 땜에 불안한지 모르겠어요.


A. 삶이라는 것 자체가 거대한 불안과 계속해서 맞서는 거 같아요. 숙명처럼.

당장 한 치 앞도 알 수 없잖아요. 알 수 없는 것은 불안하게 만들죠.

그런데 그 순간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 같아요.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불안한 게 아니니까 원인은 찾을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아요.


중요한 건 믿는 거죠. 

무엇이 더 있던, 무엇을 더 알고 싶던, 눈 질끈 감고 우선 믿는 거에요. 진심으로. 


그러면 조금은 덜 불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 불안함 자체를 동력 삼아 계속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Q. 고민 3
누군가에게 깊은 애정을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삶이 조금 더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요.


A. 이 분은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신 분 같아요.

애정을 줄 수 없어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애정을 주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요.

그런데 사람마다 애정을 주는 형태, 폭이 다른 것 같아요. 

넓고 얕게 주는 사람도 있고 깊고 좁게 주는 사람도 있겠죠. 


이분은 넓지는 않지만 깊게 애정을 주는 분 같아요. 

그러니 애정을 주는 일이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애정을 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 할 수 있을 거에요.


Q. 고민 4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없습니다.  


A. 얼마 전에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극중에서 이민기와 정소민은 계약결혼을 했다가 정말로 사랑하게 된 후 이혼을 하고 새롭게 결혼을 해요. 자신들이 정한 규칙으로. 세상이 정한 규칙이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두 사람의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그 틀을 깨는 거에요.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두 세계가 만난 거니까 어쨌든 규칙은 필요하겠지요. 

대신 두 사람의 세계를 지켜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규칙을 다시 만드는 거에요. 

아마 살면서 그 규칙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바꿔나가야 할 거에요. 


두 사람도, 둘 사이의 관계도 계속해서 바뀔 테니까.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한은요. 사랑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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