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영 Nov 01. 2020

지금 이 순간, 나의 호흡

호흡은 언제나 현재에 일어난다.


"자 여기 움직이지 않는 네 개의 점이 있습니다. 이 중 하나의 점에만 시선을 맞추고 집중해보세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얘기해주세요."


오로빌의 박물관인 사비트리 바반에서 사상적 리더 스리 오로빈도의 핵심 가르침인 인테그럴 요가를 공부하는 시간.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서 강의자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고정된 네 개의 점 주변으로 작은 흰색 공들이 마구 움직이고 있는 페이지를 띄워 보여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해하며 왼쪽 아래에 있는 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랬더니 주변으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공들은 물론, 나머지 세 개의 움직이지 않는 점도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움직이는 공들이 다시 내 시야에 나타났다. 아주 살짝만 주의가 깨져도 그 점들이 나에게로 쏟아져 들어와 눈 앞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명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제 읽은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통 생각이 너무 많아서 힘들때 생각을 안 하려고 하죠. 하지만 반추적 반응이 만드는 생각 폭탄에서 벗어나려면 생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집중력을 키워야 해요. 문제는 생각이 많은 게 아니라 집중력이 약해서 생각에 휘둘리는 거예요.


심리적 탈진 상태를 벗어나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일,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을 키워야해요. 우리에게 유입되는 무수한 정보 중에서 단 한가지의 대상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정신적 능력이죠." 
*김도인, 숨쉬듯 가볍게


오로빌에 온 이후 매일 아침마다 명상실을 찾고 있다. 오로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황금구체, 마트리만디르는 이 구체를 떠받치는 연꽃잎을 형상화한 12개의 작은 명상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작은 명상실은 각각 12개의 단어를 품고 있는데 명상자는 하루에 하나의 명상실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매일 그날 집중하고 싶은 주제로 명상실을 선택하고 있다. 오늘 내가 선택한 단어는 Progress. 




명상을 하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상을 시작하고서야 깨알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고요하게 앉아있으면 무언가 깨달음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명상에 집중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요 속에 혼자 내버려져있다 보면 막연한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면서 어떻게 하는 거야 대체?! 라고 버럭 소리치고 싶어진다. 30분 내내 미동도 않고 앉아있는 옆 사람이나 내적인 파동까지 느끼는 듯한 사람들의 호흡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명상하러 와서는 다른 사람들만 자꾸 관찰하고 있는 나를 깨닫자면, 나는 여기서 바보같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오늘은 내 옆에 앉은 아저씨가 한참을 부시럭거리며 몸에 걸친 팔찌, 목걸이를 풀어 놓더니 숨을 거칠게 쉬고 꼬르륵 소리까지 내는 바람에 마음 속으로 아저씨를 계속 째려보느라 명상 시간을 다 까먹었다.

그럼에도 고요 속에 앉아있다는 것 자체로 그냥 좋다. 그 편안하게 차오르는 느낌 때문에 나는 매일 좌절하면서도 다시 명상실에 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저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의 호흡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호흡은 늘 현재에 일어난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 단순한 움직임. 살아있는 한 나는 이 호흡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다. 내일은 더 잘하겠지-라는 기대보다 오늘 더 편안해지자-라는 다짐만 남기고 가뿐해진 마음으로 명상실을 나온다. 

이전 06화 실험도시, 오로빌에 도착해버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