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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Jan 25. 2021

실험도시, 오로빌에 도착해버렸다.

A modern Temple for all religions

오로빌에 도착해버렸다.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오로빌에 대한 파편적인 정보를 들을 때마다 흥미롭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주일 전까지만 해도 내 계획에 전혀 없던 도시였다. 정보를 따로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조차 못한 채로 도착해 방문자 센터부터 들렀다.



아무 것도 몰랐기에 모든 건 기대 이상이었다. 도시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거대한 황금 구체와 반얀트리, 태양빛을 그대로 받아 빛나는 수정구슬이 신성하게 놓여진 명상실과 고요와 평화로 둘러싸인 흙길.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사진 속에서 이 오로빌이라는 실험적인 공동체 도시를 만든 스리 오로빈도, 마더의 카리스마와 기품이 담긴 모습을 보면서, 왠지 이 곳에서는 내가 바라던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온몸의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전시관에서 오로빌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내려갔다. 아침 8시에 들어가서 11시. 한낮의 햇빛이 쨍하게 내리 쬘 때 누구보다 환한 마음으로 전시관을 나서면서 이 동네를 돌아다니려면 자전거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자전거 대여가격은 아주 저렴했다. 하루 60루피. 천원이 안되는 가격이다. 줄지어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바라봤다. 유독 깨끗하고 크기도 (나한테 적당하게) 작으면서 바구니까지 달려있는 핑크색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냉큼 그걸 빌리려고 했더니 이건 대여용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속으로 투덜대며 마지못해 다른 자전거를 살피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인상좋은 중년의 남자가 이거 너 탈래?하고 물었다. 바로 내가 원했던 그 자전거. 잠시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보니 미소를 가득 담아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준다.


for free. 그래? 그렇다면. why not?


아, 대여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커피 한 잔. 아주 만족스러운 계약금을 앞에 두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밋은 여기 오로빌에 사는 오로빌리언이다. 이 앙증맞은 핑크색 자전거는 그의 조카가 지난 달까지 오로빌에 머무는 동안 탔던 자전거인데 중고로 팔려고 내놓았다고 했다. 팔리기 전까지 어차피 주인이 없으니 마음껏 타라고 덧붙이며.

오로빌에 도착한 지 세시간 밖에 안된 나는 이곳에서 산지 12년째라는 아밋의 오로빌리언으로서의 삶이 너무나 알고 싶어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아밋은 패션디자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오로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으로 와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바로 그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와 살기 시작했다.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그렇게 빠르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놀라웠다. 그간 일궈놓은 것들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아밋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알았다고, 여기 온 순간부터. 자신이 이곳에 속해있다는 것을.


그런 아밋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불쑥 내가 오래 고민하며 매만지고 있던 생각이 튀어나왔다.

"나는 늘 새로운 경험을 원했어. 새로운 곳을 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즐거웠어. 그런데 최근에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마음을 자꾸 닫아두게 돼. 마음이 많이 지친 것 같아."

그러자 아밋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깊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한 번 마음을 열었다가 그걸 떠나보내면 많이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마음을 닫아두게 될 수밖에 없어."

아밋의 말 대부분에 너무나 공감하며 맞장구를 쳤지만 그 말에는 바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을 사랑해서 다칠 것이 걱정되는 게 아니고 애초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진 것 같아. 더이상 무언가가 궁금하지가 않아.

내 안에 사랑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봐 너무 무서워.

사랑하지 않으면 힘들 일도 없지만, 그래서 결국은 나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걸.


모험을 사랑했던 나인데 요새는 닫힌 세계 속에 스스로를 가둬두는 것 같아 못 견디겠어. 심지어 여행을 떠나왔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가 닫아놓은 그 세계 안에서 못 나오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내가 울고 있었다.

언제나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총합이었다. 연인에 대한 사랑 뿐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 소설 한 권, 영화 한 편에 대한 사랑, 오후 한 줄기 빛과 뜨거운 여름 그늘 한 조각에 대한 사랑.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

그런 사랑이 빠져나간 자리에 어느새 희미해져 버린 나를 발견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그토록 멀어지고 싶던 그것에서 그다지 멀리 있지 않았다. 사랑이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 나는 사랑이 그리웠다. 생생한 마음, 탐닉의 시간. 그렇게 열렬할 수 있었던 나 자신도. 그렇게 무언가 두렵도록 그리운 마음으로 떠나왔다.

마지막 남은 여행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10일 뒤에 출발하는 발리행 티켓은 마음 속에서 찢어 버렸다. 행복을 좇는 감각이 닳지 않도록, 일상에 무뎌지지 않도록 매일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도심 속 비밀공간, 고독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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