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사이에 백만원 어치를 잃어버린 적도 있어.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엉엉 울다 강원도 가는 버스를 탔는데 글쎄 이번엔 휴대폰을 놓고 온거야. 정신도 어디 딴 데 두고 왔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엠피쓰리까지 잃어버렸지 뭐야. 그렇게 매번 뭘 잃어버릴 때마다 엉엉 우는 나를 보며 우리 엄마는 달래주는 대신, 할 일 없는 사람 있으면 지영이 뒤만 쫓아다녀도 돈 벌겠다며 혀를 차지만 사실 이건 돈 문제가 아닌 걸.
이런 걸 굳이 자랑하는 건 아닌데 한 달 동안 휴대폰 세 개를 잃어버린 적도 있어. 그것도 각각 다른 나라에서.
콜롬비아에서 홈파티에 갔다가 산 지 네 달 밖에 안된 최신형 스마트폰을, 에콰도르에서는 그 전에 쓰던 구형 폰을 소매치기 당했어. 친구가 급한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준 비상용 현지폰도 함께 말이야. 그걸로 끝이었음 그래도 털어버릴 수 있었을텐데 페루에서는 네 달 동안 매고 다니던 배낭을 통채로 도둑 맞고 말았어. 4년 동안의 대학시절, 그리고 여행 동안 남긴 모든 기록과 사진이 담긴 외장하드가 들어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경찰서랑 영사관을 매일 들락날락하면서 절박하게 찾았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어. 3일 동안 그 도시를 못 떠나고 매일 울었어. 내가 원래 울음이 좀 헤프긴 한데 기억이 담긴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정말 차원이 다른 슬픔이라고. 인생의 소중한 시절이 송두리째 뜯겨나간 느낌이라고 하면 좀 느껴지겠어?
강렬했던 상실의 기억 때문인지 수시로 오는 불안감이 습관이 되어버렸어.
멀쩡히 잘 다니다가도 문득 불안해져서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지거나 가방 속을 마구 헤집곤 해. 그리고는 조용히 혼자 가슴을 쓸어 내리지. 그 외장하드 이후로는 한번도 사진이나 글이 저장되어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도 말이야.
인도에서 처음 3등 슬리퍼칸에 탔을때는 내가 어떻게 한 줄 알아? 휴대폰이랑 카메라를 넣은 작은 보조가방을 가슴팍에 매고 그 위에 후드 집업을 목끝까지 채워 입은 다음에 침낭 속에 쏙 들어가서는 엎드려서 잤어. 툭 튀어나온 카메라 렌즈에 갈비뼈가 눌려서 편하게 숨도 못쉬는 채로. 그러고도 불안해서 밤에 몇 번을 깼는지 몰라. 깰 때마다 허겁지겁 가슴팍에 손을 밀어 넣어 카메라랑 휴대폰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서야 다시 잠들었다니까.
그렇게 물건의 안위를 자주 걱정하던 나였는데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놀러온 친구랑 한참 얘기하다가 휴대폰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가방, 거실, 화장실, 방을 빠르게 돌아봤는데 정말로 없었어. 그러다 지하철 공중화장실에 선반 위에 휴대폰을 놓아둔 장면이 번쩍 기억이 난거야.
허겁지겁 뛰쳐나갔지. 합정역 2번 출구 아래의 공중화장실까지 뛰어가는 3분 동안 미친듯이 지나간 20분의 시간을 재생해봤어.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내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거야.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길을 밟아서 집에 돌아왔는지 정말 까맣기만 했어.
그리고서는 그 휴대폰에 무엇이 저장되어 있었고 무엇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는지 생각했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절박하게 떠올렸지. 다음 순간에는 그것들이 없어져도 괜찮은 핑계를 떠올렸어. 정말 다시 못 찾게 되더라도 덜 슬퍼하고 싶었나봐. 우당탕탕 모든 화장실 칸을 열어젖혔지만 역시나, 휴대폰은 없었어. 지하철 사무실에 가서 최대한 다급하고 애절한 표정으로 번호를 남겼어. 혹시라도 더 노력해줄까 싶어서.
여전히 가슴은 쿵쾅쿵쾅 뛰는데 몸에는 힘이 없어서 방금 뛰어온 길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거실 테이블 위에 너무나 태연하게 휴대폰이 놓여 있는 거야.
순간 멍했어.
내가 뛰쳐나간 후에 친구가 빌라 앞 빈 박스에서 발견했대. 뭐하느라고 거기에 휴대폰을 흘렸느냐며. 하하.
그런데 말야.
물건들이 이렇게 분명하게 내 손에 만져지는데 왜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