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등록은 덜컥 했다. 움직임을 배우고 싶었다. 몸으로도 내가 느끼는 것을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을 움직이는 새로운 방법, 감각을 내 안에 담아두고 싶었다. 물론 어떤 정해진 동작의 흐름을 익히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때론 어떤 규율과 제약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스트릿 댄스, 힙합, 코레오그라피.
고려했던 장르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발레, 탱고 같은 우아한 움직임도 좋지만 이번에는 길거리의 자유로움을 담은 춤을 배우고 싶었다. 삼십대에 접어들며 어쩐지 나는 '나이에 걸맞게' 적당히 우아해보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내 몸의 움직임과는 멀어져있던 것을 다시 찾고 싶었다. 언제나 갈망해왔고, 어쩌면 애써 찾지 않아도 함께했던 자유로움이 이제는 배워야만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첫 수업에 갔다. 고심 끝에 고른 종목은 힙합 기초였다. 사실 할 수 있는게 그것뿐이었다. 목을 까딱까닥, 가슴을 밀었다가 넣었다가. 베이스가 되는 단순한 동작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이 단순한 동작을 매 수업이 시작할 때마다 선생님은 정성껏 다시 알려주고 따라하도록 했다. 물에 뛰어 들기 전에 몸에 물을 살짝 끼얹듯 한 주간 잊었던 리듬을 다시 몸에 살짝 끼얹고 나서야 우리는 그날의 곡에 맞춘 동작을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입구령에 맞춰 천천히 동작을 따라할 때는 얼추 따라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로 노래를 틀고 온전히 리듬에 맡기고 춤을 추어야 할 때는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동작을 바쁘게 머리 속에서 복습하고, 스텝과 박자를 긴장 속에서 세다가 어느 순간 삐끗하고 와르르 무너지길 반복했다.
선생님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않았다. 절박한 마음으로 쫓고 쫓았다. 턴을 하는 동작이 무서웠다. 턴 하기가 무섭게 거울 속에서 선생님을 다시 찾았다. 분명히 머리 속으로는 외운 것 같은데 노래만 시작하면 새하얘지는 통에 약간은 포기한 마음이 되었다.
그제서야 다른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같은 노래, 같은 리듬이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느낌을 담아 자유롭고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주춤하고 말았다. 그들의 눈은 거울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잠시 절망했다.
학원을 등록하고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껏 설렜던 마음은, 부풀었던 딱 그만큼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배운 동작은 노래의 길이로는 채 10초도 안되는 분량이었다. 수업 말미에 참고용으로 찍은 단체 영상을 몇 번째 돌려본다.
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으려면 나는 아마 이 동작을, 이 짧은 10초를 백 번, 수백번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그리고 고작, 아주 미세하게 나아지는 나를 볼 것이다.
베를린의 어느 저녁, 밴드 공연을 보러갔다. 오랜 역사를 가진 레스토랑의 한 켠에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은 식사를 잠시 멈추고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을 바라보며 환호했다. 내 눈에 무엇보다 먼저 띈 것은 밴드의 구성이었다. 감미로운 재즈를 연주할 것 같은 연륜있는 첼리스트, 푸근한 인상의 기타리스트와 피아니스트 사이에 젊은 드러머. 어떻게 한 팀으로 구성이 됐을까? 하는 잠깐의 궁금증은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덮였다. 소름끼칠 정도로 몰입하여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팀이었다. 같은 멤버들과, 환호하는 관객들의 반응, 그리고 지금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그저 즐기는 모습에 숨을 잠시 멈추었다.
대학교 밴드 때 일렉트로닉 기타를 연주하던 나를 오랜만에 떠올린다. 합주할 때마다 나는 좌절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렇게 쉽게 하는 곡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나아짐을 위해 자취방에 틀어 박혀 앰프를 연결하지 않고 희미하게 나는 줄 소리에 의지해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하던 날들이 있었다.
포인트는 그것이다. 원래 엉망이라 그렇게 노력해도 조금 더 나은 엉망 수준이라서 누구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는 것. 내가 하루종일 연습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만큼 노력해서 겨우 이렇게 미세하게 나아진 것을 들키는 것도 창피한 일이라 혼자 남몰래 연습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나를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당장 필요한 기술을 그때그때 가능한 요령껏 습득하는 법만 자꾸 늘었다. 최대한 품을 들이지 않고 써먹을 만큼만 빠르게 배우는 것이 똑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을 정도로 수없는 작은 반복과 매일의 절망을 잊고 지냈다.
성취감은 딱 절망의 깊이만큼 따라왔다.
깊은 절망에 빠질 일이 드물어졌지만 설레는 일도 마찬가지로 드물어졌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매일 절망하고 있다. 춤은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겪으면 되지만, 일을 하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는 좌절을 매일, 매순간 느끼고 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진심을 다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반복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좌절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절망한다.
하지만 그래서 요즘 다시 설렌다. 매일 느끼는 이 절망을 버텨내도록 하는 힘은 오직 상상에서 나온다. 자유롭게 나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누구를 훔쳐볼 필요도 따라할 필요가 없는 나의 리듬을 갖게 되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반복을 해야할지, 그때마다 얼마나 좌절할 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