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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세상에서 나만 홀로 행복한 것은 잘못일까요?

다정한 이가 다정하지 않은 말을 해서 한 달을 고민했다.

by 마타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다. 일곱 살 어린 동료와 둘만의 산책을 하고 있다. 그녀는 사려깊고 다정하다. 오늘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


요새 피부 완전 물 올랐네요. 머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니다! 화장품 바꿨어요.

어머 화장품으로 그게 돼요? 엄마가 시술 좀 받으래요. 돈 아까워서 그러냐고. 돈 준다면서.


엄마는 정말 그랬다.

다른 여자들은 다 어릴 때부터 피부 관리받는데 너는 자꾸 이렇게 시들어가서 어떻게 하냐. 울써마지인지 뭔지 하면 금방 탱탱해진다더라. 엄마가 돈 줄게, 좀 가서 받아라.


엄마는 울써마지가 얼만 줄은 알고 저러는 건가. 엄마가 허세를 부릴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오늘도 카톡이 왔다.

큰딸또한번부탁좀하자지금병원가는길30만원좀부탁이번달까지면다음부터여유가되겄지미안

이혼한 부모는 각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나의 세상은 어디인가.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곤 할 순 없겠으나, 내 뿌리는 아빠의 삶과 닿아있는지 자꾸 뒤에서 밑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저 요새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잠깐 부모님 생각을 하는 중에 그녀가 어쩐 일로 먼저 자기 얘기를 꺼낸다.


왜 누구나 오래된, 여럿이 만나는 친구 무리가 있잖아요.

어릴 때 꽤 친해서 삼총사처럼 지냈는데 커가며 서서히 살아가는 모양도 달라지고 하다 보니 예전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 와중에 한 명은 저랑 잘 맞고, 다른 한 명은 개인사가 너무 불행하고 공감도 가지 않아서 점차 별로 할 말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이제 너희들을 보아도 행복한 것 같지가 않다며 단톡방을 나가더라고요,

저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던 차라. 내 마음이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아 잘된 건가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그런데 전 죄책감을 느끼는 게 싫어요. 그 친구가 불행하다고 해서 제가 행복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친구가 불행한 중에 내가 행복한 것은 잘못일까?

아빠가 불행한 중에 내가 행복한 것은 잘못일까?

세계가 불행한 중에 내가 행복한 것은 잘못일까?


일단 타인의 삶 전체를 속단해서는 안 되겠다.

불행하기만 한, 행복하기만 한 삶은 찾기 힘들 거다.

아마도 대부분의 힘든 삶에도 막연한 희망의 순간도 다행의 순간도 있겠지.


그리고 아마도 불행 중의 다행인 순간은 타인에게서 부여받는 것이겠다.

내가 불행한 순간에 늘 타인의 도움이 함께 했던 것을 기억한다.


때때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던 이들이 생각난다. 지금도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이들도 있다.

생각해 보니 어떤 관계에선 여전히 죄책감에 괴로우면서도 사랑해내고 있다. 그들의 행불행이 나의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


어떤 죄책감은 결별하여 내려놓기도 했다. 때로 내가 그런 친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존재 자체를 지운 이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함께 웃었던 사람들, 어깨를 빌려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무게가 무거워서 들어줄 수 없었던 이야기들, 자신을 대신해 다른 탈출구나 구원처를 찾아보라고 했던 이들까지.


살아가는 일은 절대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는 일이 삶을 삶답게 만드는 일이라니.


사람의 곁에 있다는 것, 정을 둔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이루기 쉬운 것은 아니다.

때때로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어쩌나,

나의 힘듦이 온전히 느껴지면 어쩌나, 당신의 문제를 내가 감당하지 못하면 어쩌나,

우리 둘 다 깊은 바닷속을 가라앉는 거대한 납덩어리가 되면 어쩌나,

제각기 자신의 심연에서 홀로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을 느끼던 밤들은 어떠한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많은 어긋난 관계들과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혼자만의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돌볼 수 없음을 말한다.

신경이 짓눌려 감각할 수 없게 된 나병환자가 결국 신체 부위를 잃게 되는 것처럼.

리베카 솔닛은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라고 했다. 고통 없이 행복한 우리가 과연 우리를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타인에 대한 죄책감을, 우리의 연대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지 않고 살아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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