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정리부터 하라고 했는지 알겠다
부인할 수 없다. 등 따시고 배부르니 왔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내 우울은 분명 그랬다.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느꼈을 때, 이제 겨우 가난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들을 그때그때 가질 수 있을 때 이 기분이 왔다.
노력해도 모든 걸 가질 수도 없고, 나보다 부자들은 차고 넘치고, 성공이란 녀석은 남의 이야기고, 삶은 여전히 부족한 것들 투성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아뿔싸. 우울에 빠져 버렸다. 아니 깨닫기도 전에 우울이 먼저 왔다.
처음엔 외면일기를 썼고, 그다음에 모닝페이지를 썼고, 미라클모닝 챌린지를 하며 어떻게 부여잡고 가고 있었다. 1년 간의 노력 덕에 어떻게 삶이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같았다.
문제가 불거진 건, 그 이후다. 누적된 피로감에 우울이 더해져 그대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아무 때나 눈물이 나서 사회생활하기가 부끄러워졌고, 사람들을 만나면 늘 힘든 얘기들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혼자 남게 되면 그 밝고 긍정적이고 재미있던 사람이 우중충한 진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더 우울해졌다. 악순환이었다.
이제 더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았다. 정신과에 한 달 정도 내원 했고, 약도 처방받았으나, 기본적으로 약물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약을 먹기 불안했다. 너무 바쁘기도 했지만, 상담을 할 때마다 정신과 의사와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그만뒀다. 과거엔 이런 대화를 친구들과 나누었다는 사실에 더 슬퍼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눈물이 계속 나고, 우울한 이야기만 하던 때는 지나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번 잃어버렸던 '행복'이라는 감각에 집착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감'을 느낄 때조차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에 표류했고, 쇼핑 중독에 빠졌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계속 사들였고, 가진 물건들은 죄다 당근에 내놓았다. 안 팔리면 나눔을 했다. 언제부턴가 서랍장 위로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카드명세서에 찍힌 금액을 보고 당황했지만 계속 사들였다. 새롭고 좋은 물건들이 잠시라도 나를 위로해 주길 바랐다.
물건으로 위로되지 않는 감정은 경험으로 위로하려고 했다. 다양한 곳을 여행했다. 많은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았다. 결국.. 돈을 쓰고 또 써도 아무것도 소용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행인 건 그나마 내가 크지 않은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서랍장 위로, 장롱 안으로 켜켜이 쌓인 옷더미들을 치워야만 했으니까. 옷더미를 치우다 보면 반드시 알게 된다.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소유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흘러가는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하다가는 결국은 쓰레기로 가득 찬 옷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정리를 하다 보니 오랫동안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미친다. 철 지난 옷,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인플루언서가 좋다고 계속 떠들던 옷들..
서랍장 위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다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음악도 켜지 않고, 차도 따르지 않고, 가만히 옷만 정리했다. 부피가 큰 옷은 정리함에 넣고, 입지 않는 옷은 따로 꺼내놓았다. 언젠가 입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냈다. 사놓고 입지 않은 옷은 간단히 코디해서 벽에 걸어두고, 나눔 할 옷은 따로 챙겨두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내게 벌어진 일들과 관계들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전날의 다툼에 대해 쓰고, 일기를 썼다.
어떤 이들에게는 감정이나 상태가 바로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나 물건을 따로 시간을 내서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일기를 펴니 우울을 앓고 있다 여길 때조차 매일매일 행복한 기억과 경험을 쌓아나간 과거의 내가 보였다. 집착하니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 그것 역시 과도한 집착과 욕망이다. 사실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며 살고 있었다. 과도한 행복 집착과 추구로 인해 느끼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