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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Oct 19. 2023

남자에게 코르셋을 입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코르셋 입은 남자가 됩니다.

우리 회사에는 리얼 모델을 하다가 입사하게 된 남자 직원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하얀 피부와 배둘레가 육덕진 몸매,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 꺼진 이마, 그는 마치 검댕 묻은 북극곰 같았다.


당시 나는 여러 차례 리얼모델의 애프터 도달에 실패한 상태였다. 미용성형분야로 산업군 자체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얼모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프로세스를 전혀 몰랐고, 그 때문에 모델을 구하는 것도, 어떤 시술을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애프터까지 잘 이끌어내고 표현해 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잠깐! 리얼모델이랑 성형시술 등의 대가를 받고 리얼한 비포 애프터를 공개하는 성형외과의 모델.


어느 날 촬영장에서 협력사 직원이었던 그를 본 순간,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이토록 완벽한 비포 모델이라니. 심지어 협력사 사장은 내게 애프터까지 여정과 콘텐츠 제작까지 본인이 책임을 져준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합심했다. 나는 회사에서 입지가 달렸고, 그는 당장 제작 수익이 달렸다. 내친김에 그는 다른 직원도 러닝메이트로 함께 뛰게 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리얼모델 A와 인연을 맺었다. 나중에 그는 "저를 빤히 쳐다보시기에 저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알았어요"라고 전했다. 반하기보다 신기해서 쳐다보는 게 더 어울렸을 텐데. 역시 남자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대하다.


그는 거의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통해 환골탈태했다. 이리저리 다듬어 세상에 내보내기로 한 시점쯤, 협력사 사장은 내게 말했다. "세상엔 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네요"


그렇다. 그를 역변시킬 의학기술은 아직 없었다. 그는 추남에서 보통남이 되었다. 보통남은 회사의 우수사례로 광고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이 해프닝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이후다. 그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 그는 입사공지가 났던 타 부서로 지원입사를 했는데, 우리 부서와도 많은 협업을 해야 했다. 대부분은 대회의실에서의 만남이었는데, 그와 이야기한 다른 직원들은 불쾌감을 표하기 일쑤였다.


그가 자꾸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oo님은 정말 예쁜 것 같아요"

그가 외모 칭찬을 한 oo은 회사에 1명뿐이라, 그녀는 사내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되어 망신살이 뻗쳤다.

"oo님 정도로 가슴 크면 남자들이 다 좋아하지 않나요?"

"oo님은 너무 날씬하고 키가 크니까 눈에 정말 확 들어오는 것 같아요"

하필 예쁘다는 말을 들은 이가 내 팀원이라, 타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불러다 놓고 주의를 주었다.


"예쁘다는 말도 분명 평가예요.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지 마세요"

그는 알아들었다. 주의하겠다 말했다.

"그런 얘기 정 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요~ 저는 그런 말 좋아해요"


나는 그래도 그의 입장에서 좀 곤혹스러울 것 같아서 위로한답시고 한마디를 던졌는데, 또 내가 빌미를 준 모양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마타이 님도 홍조만 좀 어떻게 하면 정말 예뻐지실 것 같은데..."


그는 되었다. 코르셋 입은 남자가.


* 이 글은 각색했습니다.

* 직업과 성별, 체형, 생김새, 시술 내용 등은 모두 변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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