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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26. 2019

불행은 어떤 순서로 오는가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한 시절을 풍미했던 하이틴 스타 이미연을 스타덤에 올린 1989년의 이 영화의 타이틀이 30년을 돌아 다시 화두가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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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저런 삶의 질곡을 겪어본 기성세대라면 일단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지 암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학벌 순도 아니고, 재물 순도 아니지만… 하다가도 어라 잠깐 하며 살짝 다시 고개를 비틀어 옆으로 틀며 중얼거리기를, 근데 또 그게 아주 그렇지도 않은데,라고. 모두에게 나노 단위의 사정과 사연이 있지 않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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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묻기를, 불행은 어떤 순서인가요?
각자의 대답은 별만큼 많겠지만 거르고 걸러 공통적으로 모아지는 순번을 추려 보자면,
“불행은 억울함의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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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억울함이란 비교평가의 잣대에서 떨어지는 불만족의 경중에 따른 지표 같은 것이다. 어느 정도 자기 인식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목 놓아 대성통곡을 하게 되는 사연들 중 대부분은 공포, 허기, 불안에서 오는 불만족보다는 억울함에서 오는 불만족이 크다. 우리 인간이 그렇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의 소외감, 상실감, 분노 등은 단연코 자아가 강한 인간들만이 누리는 슬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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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순서인지 묻는 것은 어리석다.
차라리 불행이 어떤 순서로 오는 지를 살피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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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이유로 나는 내 아이들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순서보다는 불행이 다가오는 순서를 알려주고, 가능하면 그것들이 다가올 때 이놈들을 끊임없이 순번 바꾸기를 시도하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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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발버둥 쳐도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이 세상은 어차피 억울한 세상이다. 나도 여자로 태어날 줄 몰랐으며,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랄 줄 몰랐듯이, 어라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 “똑같은 것들”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우주의 질서 정연함이란 눈에 보이는 공명정대함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환원 구조 안에 있으리라 여기며, 그래, 오늘은 아이들과 불행이 어떤 순서인지 다시 한번 이야기 나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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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분명한 행복이니까. 그리고 이것이 가장 확실한 교육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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