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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Nov 05. 2017

아침에 행복한 사람

다시 꺼내 보는 16년 전의 기록

오래간만에 참 잘 잤다. 

빈 가방을 울러 메고 아침 나들이길. 장을 보러 갔다.


햇살이 얕게 들어오는 길 위를 떠다니며, 문득 중국의 그날들의 냄새가 코로 스친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지독스럽게 시끄럽던 새무리의 소리, 와글부글 아침부터 인간들이 떠드는 소리.
중국의 아침은 참으로 부산스러웠다. 
길가에 연탄불로 끓인 만둣국과 꽈배기를 먹으며 껄껄거리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우유를 사러가는 길. 그 비포장 길을 걸으며 들킬 염려가 없는 타인이 되어, 중국인이 되어 그 길을 걸었다.
골목 어귀에서 1원짜리 만둣국 후루룩.
그러면서 그 가을에 나는 그리 생각했다.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행복은 어떤 것인가.
가볍게.. 절망하던 시절이었다.


서안 역에서 친구를 북경으로 떠나보내던 아침, 역 앞 양고기 집 식당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끔찍하면서도 반복되고, 이제 나는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아무런 희망도 의지도 없던 그 아침에, 난 그 할머니의 미소를 보았다.
주글주글 주름진 손마디를 보며 그녀의 인생은 어떡하였을까.. 그녀는 '행복'했을까. 

뉴욕의 주가가 얼마인지, 모뎀 속도가 얼마인지, 니체가 누구인지 그녀는 아마 모를 터인데, 

그녀는 살면서 무엇을 알고 싶었을까? 연륜, 그저 체득된 시간의 무게가 그녀를 만족시켰을까?

그녀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행복하세요?"
대뜸 질문에 놀라지도 않고 대답하기를, "아침이 되면 늘 행복하지."


목이 메어 양고기 수제비를 채 넘기지 못했다. 
이러다 잊혀질 순간의 감동이라도 좋다, 이러다 돌아설 감상의 기억이라도 좋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할머니의 행복이 질투날만큼 부러웠다. 
할머니의 뻔한 일상이 보이는 순간에도, 그녀의 단 한마디 말. '행복'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결국 한 시간씩이나 장을 보았다.
반가운 건, 그곳에서 이제 두부를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부 한 모를 지져먹을 요량으로 무거운 짐가방을 가볍게 업쳐들고 냉큼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     2001년 가을의 기록

Fabrizzio와 헤어진 후 서안역 앞 양고기 국밥집에서 Andrea, Mauro와 함께

Eva Cassidy - What A Wonderful World

https://youtu.be/pPAGH0A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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