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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Nov 15. 2017

두통, 추억, 그리움

더는 쓰지 않는 아주 오래된 메일 계정에서 필요한 자료가 있어 찾다가, 1999년과 2000년 무렵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메일들을 보았다. 17년 전, 일상의 지루함과 삶의 치열함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의 낙서와 같은 메일들.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그 일상의 편안함을 함께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긴 이도 있고, 자의반 타의반 남남처럼 지내는 이도 있고, 이미 하늘로 떠난 이들도 있다.


중년의 일상 중에 돌아본 내 청춘의 찬란함은 생각보다 초라했고, 그럼에도 소란스러웠고, 여전히 소중함을 잔뜩 안고 저편에 서 있는, 어떤 추억들.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보여준 세상이 전부였으니 마치 내복을 입은 상태인 거고, 겨우 걸음마를 걸으며 홀로 살아보려 했던 20대부터 세상살이는 그 내복을 벗은 채 느끼는 한기 같았다. 그래도 그 스산함 덕분에 조금씩 뛰는 법도 배웠고, 귀찮아질 때는 걷기도 하고, 쓸데없이 질주도 하고, 아마 그랬을 거다.


이제 절반 겨우 걷고 뛰고 지금, 서 있다. 


오래된 메일 수신함에 가득한 스팸메일을 걷어내니 그제야 드러나는 내 오래 전의 사람들. 잊고 있던, 잊으려 했던, 잊어버린 조각들. 나는 귀하고 소중한 작은 우정과 사랑과 인연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다. 


두통이 심해 누워 있다가 왈칵 쏟아지던 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그 무게를 두통으로 짓이겨보면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해질 무렵.


2000년, 반지하에서 시작했던 홀로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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