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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Dec 16. 2017

폐허, 미친 듯이 혼자.

- 황지우 "뼈아픈 후회"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폐허가 된 돌판과 그릇들을 보며 “모든 것이 내 속으로 들어갔고, 여기는 폐허다”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른 둘, 아이 둘 딱 4인분의 삼겹살이 그렇게 사라졌다. 고기와 반찬만 사라졌다면 그런가 보다 할 것을, 공교롭게도 무언가 내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섭섭한 마음 하나도 식도로 딸려 들어가 버렸다.


남편과 아이들의 먹을 고기를 굽고 자르고, 뒤집고, 차려주고 먹여주고, 닦아주고 나니 ,그제야 남은 찌꺼기가 내 몫이다. 그렇게 당연했던 지난 10년, 이 후방 전선의 식탐이 오늘 새삼 돌판 위에서 구워지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남은 것을 먹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더라.


황지우 시인의 마지막 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애정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자식과 존경하는 부모가 있어도, 
인생은 미친 듯이 “혼자”더라.





Vladimir Vysotsky - Eh raz esche raz (My Gypsy Son)          



https://youtu.be/Vj3pd-a-j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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