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술

3분만 앉아 쉬다 가세요

by 신하영






3분 소설 - 술










"매번 내가 말하잖냐 이따위 술이 뭐가 도움이 된다고"


그래 놓고 가득 채운 술잔을 목 구녕에 넘기는 나는 정확히 4시 30분에 집에 도착했다.


베개에 한껏 얼굴을 묻고 컨츄리 한 팝송 소리에 눈을 떠보면 이미 내 하루는 오후에 도달해있다.


그래도 옷 벗고 양치하고 잔 게 어디야






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언제부턴가 술잔에 의지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애처로움보단 어른스러움을 먼저 느꼈고 그래서 조금 더 맛있는 안주를 찾으며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애주가라는 말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누구처럼 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떡해





겨울밤엔 뭘 해야 할까

당연히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아니겠는가

카페에서 커피?

커피는 고독의 시간을 길게 해줄 뿐이라고.






뉴욕의 아침을 생각하며 산 무선 오디오에서 비긴 어게인의 Like A Fool이 흘러나올 때 그제야 화장실로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 마크 버팔로의 뉴욕 아침은 어느새 나의 로망이 돼있었다.











2시의 햇빛은 창문을 뚫고 우리 잔디의(나의 동생) 방석이 되어주고 있다.


푸석한 머리를 손짓으로 쓸어 올리고 냉수 한 컵에 기지개를 펴니 어느 정도 정신이 든다.


아무래도 배게에 진드기가 많나 보다 양볼이 푸석해 서둘러 수제비누로 세수를 했다. 귀찮으니 일단 스킨만 바르기로 하자



다행히 설거지거리는 없다.

해장은 분명하고 왔을 터니 이렇게 속이 좋은 거겠지


휴대폰 배터리를 교체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아침"


"좋은 낮이다."


"어째 잘 들어갔냐?"


"어 근데 왜 문자에 10만 원이 긁혔다고 적혀있냐"


"쐈겠지"


"아니야 인마"



"2차는 내가 냈으니깐 짝짜꿍이다"


"아오 얼마를 쓴 거지"


"근데 오늘 무슨 요일이냐"


"몰라 네가 봐 새꺄"






피자 헛에서 받은 캘린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래 26일 토요일이네"


"오늘은 보지 말자 절대"



"섭섭하지만 그래야만 한다."


"미친놈. 민경이도 좀 챙기고 해라 세상에 그런 보살이 어디 있냐"



"바쁠걸?"


"바쁘긴 네가 바쁘지 이거 끊고 전화 한 통 혀, 끊는다."













메신저를 보아하니 2시에 연락이 끊겼다.



사랑하는 내 여자친구 민경이



그러게 최근 일주일 동안은 이상하게 혼자인

느낌이 많이 든다.

내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인가 받는 게 무지해져서 인가 술을 마시면서 생각하는 건 어쨌든 민경이는 내 여자고 내가 지켜야 한다는 거



근데 우리 둘은 내가 소주잔을 부딪히는 것만큼 많이 싸운다.



옛날에 태어나 만났더라면 벌써 누구 하나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농담이고 사실 어제 새벽에도 보고 싶었다.

벌써 2년이나 만난 민경이에게 난 왜 용기를 못 내는지


너무나 편해졌음에 이제는 보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고 쑥스럽고 그렇다.


이거 진짜 이상하다.





-잘 잤습니다 저는-


-머리는-


-아주 말끔하지요~-


-그래 얼른 쉬어-


-뭐하십니까?-


-작업 중입니다-


-응 전화해 다하고ㅋㅋ-






나는 지금 이 대화가 어색하지 않다.

연락은 안부로 족하고 하루에 한 번씩 목소리만 들으면 나는 민경이라는 둥지 안에서 포근한 안락함을 느낀다.


글쎄 요즘은 내가 좀 이상하다고.


그냥 혼자인 느낌이 들어 이게 좋은 건가 아니면 무서운 건가 그걸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 멀어졌는진 생각해보지 않았다.


맨 정신에 힘든 건 내 유리멘탈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그래서 친구랑 술을 마셨다.

내 속을 말하고 그리고 꺼내서 뒤집어도 보고 해봤지만 그게 내가 뭐 저렇게 한다고 답이 나오나 뭐...



일단 샤워를 하기로 했다.


숙취가 없음에 감사하고 일단 내 기분을 끌어올리자

별거 아닐 거야



자, 그럼 오늘은 이 곡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감고

거품을 몸에 바르고 살색 엉덩이를 흔들었다.


근데 왜 양치할 때는 노래를 못 불러서 그런가 진지한 생각이 나는 거야?


나는 치카치카 소리를 내며 미세하게 민경이를 말하고 있었다.







.








"여보세요"


"응"


"뭐해 민경아"


"집에서 작업 중이지~ 점심 먹었어?"


"아니! 맛난 거 사서 갈까 하는데 어때?"


"안돼 데드라인 얼마 안 남아서 바빠"


"에 언젠데?"


"28일이라고 내가 백번은 말했어"





이런...





"아 알지알지 그러면 저녁에 나올래? 밥 먹자"


"그냥 다음 주에 보자 이번 주에 너도 바쁘잖아 연말이라서"



아닌데?



"아니 내가 무슨.. 잠시라도 못 봐?"


"응 그냥 작업만 하고 싶어서. 다음 주에 보자 알겠지? 저녁에 전화할게."







튕겼다.

가만 보자..

그래 예전이라면 어떻게든 봤겠지

매 순간을 황금같이 생각하자 했는데 지금은 일보다도 못한 존재네.

편해졌으니 어째 실망감도 들지 않는다.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 다음 주에 데이트하면 되지 뭐





.





근데 티비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게임도 재미가 없다.



그러니깐 나한테 필요한 건 지금 당장 민경인데

가질 수가 없으니 내가 이렇게 소파에 앉아 다리만 떨고 있는 거겠지



지난 일주일, 아니 조금 더 크게 한 달을 회상하자

무언가 큰 혹 덩어리가 우리 사이에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고 나는 민경이가 아닌 내 생활을 생각했다.



그때 아마 내가 술에서 깬 거 아닐까?





.






무지라는 맛있는 술은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며 심지어 가격도 싸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양도 많아서 취하기도 딱 좋다.


정작 내가 취해야 했던 민경이라는 술은 저기 냉장고에 넣어둔 채

무지에 취하고 민경이를 외롭게 했다.



미쳤다.

어째 이리도 무지할까


친구가 말한 보살이라는 말이 내 귀에서 멀리 떠나갔다가 부메랑처럼 돌아오며 내 가슴을 뚫었다.



이거..


조금 늦었을 수도 있겠다.







.








그렇게 나는 민경이의 집으로 갔다.



딩동 딩동



민경이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반겼고 나는 그 상태로 내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내가.. 민경아 진짜 미쳤었나 봐."


"뭐야 갑자기~"


"방금 정신 차렸어. 나 그동안 뭐한 거냐 미친놈."


"으이고"


"고마워 사랑해 민경아 내 맘 알지?"



민경이의 입술에 뽀뽀를 하고 다시 끌어안았다.

우리 민경이도 따스한 두 손으로 내 등을 감싸준다.



그래 내가 취해야 할 건 바로 이 여자의 냄새고 사랑인데




"친구가 너보고 보살이래"


"이 정도면 득도지"


"네가 딱딱해지는 게 느껴지니깐 미치겠더라. 근데 좀 멋있다? 완벽하게 깨닫게 해주려고 그걸 또 기다리고"


"2년 만나보면 딱 알아. 못 깨닫고 내가 그걸 내 입으로 말하는 순간 내 자존심은 다 깨지는 거야.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하긴"




그때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디"


"왜?"


"도저히 안 되겠다. 일 잔만 하게 오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는데

웃으면서 느낀 건 정말 행복하다는 거였다.





"꺼져, 우리 민경이랑 한 잔할라니깐"


"헐?"


"보살이라는 말 때땡큐다 자슥아, 끊는다."


"와 나 배신감 들었다 순간"


"꼽으면 여자친구 만들던가 수고 혀"




전화를 끊고 민경이를 향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는 긴 숙취상태에서 깨어났다.


오늘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마시는 술 한잔은 너무나도 달다.


아니나 다를까 난 이내 취했지만


그건 술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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