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믹서기

3분만 쉬다 가실래요?

by 신하영







<3분 소설> - 믹서기















"젠장.."


오늘도 이상한 꿈을 꿨다.


이도 저도 아닌 꿈. 마치 몽크의 절규 안에서 홀로 서성거리고 있는 꿈이다.


누구도 나오지 않으며 회오리같이 휘감긴 여러 어두운 색깔들이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휘돌고 있다.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길래 내 꿈에 계속 나오는 것일까?




.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일어나 짧은 샤워를 했다.


물을 마시고 주방에 있는 믹서기를 꺼낸다.


매일 내가 아침마다 하는 일.

바로 뒤엉킨 감정들을 믹서기로 섞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 지쳐있을 때

어딘가를 떠돌다 낡은 골동품 상점에서 처음 이것을 발견했다.






"자네, 정말 이 말을 믿는가?"



할아버지는 낡은 믹서기를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아뇨, 그냥. 그냥 뭔가 재밌어서요."



감정을 섞을 수 있는 믹서기라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싶었다.



"얼굴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구먼.

그냥 가져가게 내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니."



할아버지는 슬픈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 믹서기를 보며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냥 주시는 겁니까?"



"가져가게."



이 말을 하고 그는 굽은 등을 보이며 방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집으로 가지고 온 믹서기는 며칠 동안 낡은 창고에 넣어두고 꺼내지 않았다.



감정은 과연 꺼내어지는 존재인가?



어느 순간부터 사로 잡힌 생각에 나는 그 믹서기를 꺼내 내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생각을 하며 넣다 보니 금방이고 믹서기안이 가득 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느낀 마법의 순간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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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홀가분한 기분은 무엇인가

나는 곧장 버튼을 눌렀고 이내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 마구 갈려지는 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벅차오름에 버튼을 끄고 나는 곱게 갈려진 내 감정들을 꿀꺽 집어삼켜버렸다.





그 날은 회사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 날은 모두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날은 거울 속에 내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 날은.






믿지 않았지만 변화가 알려주었다.

내 감정들은 이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난 매일 아침마다 내 모든 감정을 믹서기 안에 넣는다.


버튼을 꾹 누르고 눈을 감은 채 가슴에 울리는 떨림을 느낄 때면 마음이 비워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오늘도 내 감정을 갈아 마시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요새 좋은 일 있나 봐?"



무뚝뚝한 김 부장이 나한테 말을 걸어주셨다.



"아, 네. 뭐, 그냥 다 좋네요 하하."



"웃고 다니는 게 보기 좋아. 이번에 제출해야 될 서류는 준비됐는가?"



"네. 여기 있습니다."



"좋아. 그럼 수고하게."



감정을 비워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만 나온다.


걱정이 없으니 그런 것이겠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사회라는 쳇바퀴 안에 갇혀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우리.

미로 같은 사무실 안에 각자의 위치에서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원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저기 저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입꼬리는 반쯤 내려가 있고 눈가는 축 쳐져있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은 회색빛으로 메말라져 있다.



이런 것이었구나.



저들은 집, 직장,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고 또 짊어지고 있는 것이구나.


하나 그 감정들 중 행복한 것은 없는 것일까?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일까?




.





나는 내가 그들보다 높은 곳에 있는 줄 알았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큰 착각이었다.


줄곧 난 미숙했기에.





.






시간이 꽤나 지났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침울한 감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허나, 매일같이 꾸는 이 악몽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샤워도, 갈증에 마시는 물도 미룬 채 난 믹서기를 꺼내 내 감정을 섞고 있다.


언제부터인 걸까? 이 믹서기에 기대게 된 것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매일 아침 마신 내 감정은 정말 새하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었으니깐.



며칠 전엔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떠났던 그 여자가 다시 내게 연락을 했다.


줄곧 그녀를 생각하며 침울한 나날들이 보냈었건만 왜 그 연락이 기쁘지 않은 건지.


매일 그녀를 다시 만나는 상상을 했었는데 왜 지금은 나의 현실만 보이는 건지.


기뻤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






친한 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짓고 있던 웃음을 멈추고 검은색 양복을 꺼내 입었다.


근데 장례식장에서 동생의 영정사진을 보는 나는 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려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웃지 못함에 그 시간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무거운 짐을 싣고 수레를 끄는 할아버지를 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엉엉 울어대는 것을 보아도


친구가 사랑에 아파하는 것을 보아도


나는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남은 건 오직 웃음뿐인가.



언제부턴간 내 웃음이 과연 진실된 웃음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향해 짓는 내 미소는 과연 진실된 감정이 담겨 있는 걸까?



잠이 오질 않는다.


꿈속으로 들어가면 난 또 썩어있는 하늘을 보며 휑뤵한 곳을 서성거려야 한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기에.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믹서기를 꺼낸다.


오늘도 마치 약처럼 내 감정을 마구마구 집어삼키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앞으로 내가 겪는 일에는 오로지 행복밖에 없는 것일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행복이 매일같이 펼쳐져있는데 왜 나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일까?


매일같이 힘들었던 그 감정들은 이제 어딜 가도 찾을 수 없는데, 그래서 난 무지 행복한데 왜 점점 전에 내 모습이 그리워지는 걸까?





.





고통스러운 괴리감에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여기라면 해답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왔는가."



"아, 네 안녕하세요."



"그래,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먼."



"아..."



"힘든가?"



"네."



"그토록 바라던 행복인데 왜 힘이 드는가?"



"행복하지만.. 저 사실, 매일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로 부턴 믹서기에 더 의지하게 됐습니다."



"그건 악몽이 아니라네."



"그럼?"



"그건 자네가 잃어버린 본래의 감정들이라네."



"네?"




어두운 색들이 가득 휘말린 채로 하늘을 가득 메운 것들이 내 감정들?




"자네는 오로지 행복만 찾았었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 본연의 감정을 버리는 것과도 같다네.

자네가 매일 아침 뒤섞는 그 감정들은 순수한 자네의 감정들이었다네."



"아니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하지만 자네는 그 믹서기로 줄곧 행복했지 않는가?

행복은 말이네. 하나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면 나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야

자네는 그 행복을 믹서기로부터 받았을 뿐이지."



"그래서 슬프지 않았던 거군요. 맞아요. 행복 이외에 모든 감정들이 사라진 것만 같아요."



"선택은 자네의 몫이야. 하지만 이미 믹서기를 사용했기에 다시 돌아가긴 힘들 거네."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길 바라네."





.




내 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었던가.


나는 가게를 나선 후 한동안 거리를 서성거렸다. 마치 꿈속의 나처럼.


나는 내 모습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난 줄곧 믹서기를 쓰면서 매일 가면을 쓴 건지도 모른다.


그것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


꿈에 나왔던 그 썩은 하늘은 내 헛된 망상으로 더러워진 것일 뿐.

나는 그것을 이제야 알아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믹서기를 꺼냈다.


어느덧 내 손길로 여러 부분이 닳아져 있다.


그렇지만 이젠 안녕을 고해야지.


내일 일어나면 다시 널 찾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행복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거였어.


그러니 이제 내 앞에서 사라져줘.





.






믹서기를 망치로 깨부수고 봉지에 담은 뒤 분리수거를 했다.


믹서기가 깨질 때 나는 소리는 마치 내 비명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소리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악몽을 꾸고 아침에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믹서기를 찾았지만 이제 그 믹서기는 없다.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샤워를 하고 차가운 물을 마셨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그 모습이 꽤나 우울하지만 이것이 본래의 내 모습이었다.






.







오늘은 회사에 가서 오랜만에 야단을 받았다.


오늘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은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오늘은 죽은 동생과 찍은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세상 모든 것들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나는 행복했다.



울 수 있음에.

웃을 수 있음에.

















믹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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