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불안함이 느껴질 때

나의 삶은 약간 기울었다

by 신하영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한다. 음악을 틀고 뜨거운 물을 정수리로 받아내며 어젯밤 악몽을 씻어내려 했지만 꿈의 잔상은 아직도 내 몸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로션을 바르고 대충 머리를 말린 뒤 눈에 보이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선다. 잔잔한 피로감에 음악을 들어보지만 나에겐 이보다 어중간한 아침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일자리로 향한다. 요즘은 창 밖을 잘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창밖을 바라보는 게 의식적인 행위가 될 정도로 나는 핸드폰 속 세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유를 보자 하니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어디가 불안해 자꾸 재밌는 영상이나 남의 이야기를 보려 하는 나 자신이 뚜렷이 나타났을 때 꽤나 큰 공허함이 느껴졌고 서둘러 창문을 열고 하늘만 쳐다본 적이 있다.


일을 하고 나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로 향한다. 자전거는 풍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하니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해 정리되지 않은 일들을 한다. 출판사 업무를 시작하면서 해야 할 것은 수도 없이 불어났고 그것들을 하나씩 시도하고 처리해나가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헤쳐나가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서툴기 때문에 종종 고착되는 마음이 느껴져 같이 한숨을 쉬곤 했다. 그건 자본주의와 실질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결핍이었다.


밤이 되어 퇴근을 한다. 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내일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글쓰기 클래스가 있으면 그것을 준비하고 아니면 이렇게 글을 쓴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소파에 널브러져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가 있었다.



일상을 나열해보았을 때 나는 평범한 프리랜서의 하루를 보낸 것에 틀림없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사는.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 몸을 휘감아 나의 이불을 대신할 때가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인 나날이 쌓여갈수록 클래식을 듣고 책을 읽고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보았지만 그건 나의 불안과 별개였던 것 같다. 그들에게 감정 폭력을 하긴 싫었고 줄곧 괜찮다고 말한 건 나였으며 실제로 괜찮다고 믿었던 것도 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계속 나아가며 살았다. 이것이 나의 불안을 정의하지 못하는 이유다. 불안한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나아질 거라고 굳게 믿으며 내 안의 본질적 감정을 무시해버린 것.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잔잔한 우울을 느끼는 동시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가까운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전부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절대로 적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 자신과의 타협을 하는 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내비치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너무나 물렁한 사람인지라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묻곤 하는데 속 이야기를 명확히 얘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상이 기울어지는 게 느껴진다. 삶은 언제나 위태위태하니 절망과 행복의 저울질 속에 누군가가 아주 못된 마음을 먹고 나의 절망에 돌멩이를 얹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인간적 본능으로 평균을 맞추기 위해 행복을 향해 달려간다. 울면서 행복까지 뛰어온 사이에서 일어나는 괴리감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처럼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으니까. 그것이 아침에 잉태된 나의 모습이었다. 조금이라도 웃기 위해 조금이라도 이 불안을 잊기 위해 했던 나의 행동.

그렇게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던 내가 이리도 무색해진 게 가끔은 너무나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