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아름다운 날

잠시 앉아 쉬고가세요.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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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3년이라는 세월이라는 건 정말로 긴 영화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에서라도 이 영화의 끝이 나지 않길 바랐건만 먹먹한 클래식과 함께 엔딩 크레딧은 천천히 나의 눈으로 스며들어왔다.

자리를 뜨지 못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든 편안했던 그 자리의 따스한 온기를 져버리긴 아쉬웠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그 따스함을 뒤로한 채

남겨진 자신들의 감정만 챙겨서 자리를 떠버리더라.

흔히 말하는 우리의 이별이라는 게 이리도 한 순간이었던가




나는 멈춰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느꼈던 것들을 마치 좋은 추억이 된 것 마냥 떠들며 이 곳을 빠져나갔다.

아직 끝나지 않는 엔딩 크레딧을 남겨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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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매 순간을 기억한다는 건.




결국 사람은 약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기억이라는 것은 어쨌든 선한 것들만 남겨놓는다.

당신이 아무리 미워도 시간의 거름은 뜨거웠던 내 가슴이며 눈에서 나오는 아련한 물방울이었다.





홀로 이 곳을 빠져나올 때 뒤를 돌아보니 맑은 공허함만 남아있더라.

그 휑한 공간 안에서 마지막 숨 넘김을 이별의 습작으로 남기고 난 슬픈 클래식 곡에 내 발걸음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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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처럼 매순간이었던 네가, 다른 사람을 보며 웃고 깍지를 잡으며 같은 노래를 듣는다면 나 역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이별이라는 건

인연이라는 소중한 보석을 가지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맹인과 같을지도 모른다.

소중함을 알고 서로를 보물같이 여기던 우리는 각자의 손에 서로의 눈을 가리는 것을 택했고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이제는 회색빛 그림자를 보길 원한다.





누군가 너의 손을 잡아준다면.

내 손을 잡아준다면.





행여나 그것이 차가운 손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냉기를 숨기고

손을 넓혀 그들의 피부를 따스하게 매만져주자.

내가 말했던 그 아름다운 날은 다시 떨리게 되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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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비추는 이 햇살조차 조금 밉다.

멈춘 줄 알았던 오늘이었지만 어쨌든 내 시간은 다시 천천히 물결처럼 바다를 향해가고 있다.

지나가는 차, 그리고 번쩍이는 횡단보도, 떨어진 낙엽, 피부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눈에 넣어주지 않았던 것들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축축해진 마음에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나 너무 힘들게 될 테니까.

가식적으로 주먹을 쥐고 나는 걸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 피아노 음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아름다운 날이다.






세상이 선명하니 이제야 당신이 보이는 구나





이젠 좀 더 잘 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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