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두 갈래 길

잠시 쉬다 가세요 단, 3분 만이라도요.

by 신하영















누구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어디서 그 누가 뭐라고 하든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험난하고 가파르며 휘몰아치는 바람이 부는 길에서

그들은 낡은 신발에 발을 의지한 채

끝이라고 생각하는 저 빛을 향해 가고 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하나의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헛된 의무감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이 현실에 그들은 정말 한 길로만 가야 하는 건가?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선의의 선물의 시작점이 아니었나 싶다.








난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단지, 옆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럼 쉼을.

숨 쉴 수 있는 단 몇 분간의 시간을.
















<두 갈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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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김한수

나이는 43살

직업은 중소기업 샐러리맨

결혼 16년 차

2남 1녀 중 장남

슬하에 두 명의 딸

경기도 파주 거주







내가 처음 그의 등을 보았을 땐 정말이지 60대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요즘은 노인들도 젊게 사는데 역시 많은 것에 치이게 되면 자신의 건강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어진다.

이 남자는 미련하다.

돌려 말하면 대한민국 샐러리맨 가장들은.



마치 자신이 짊어진 모든 것들에 꾹 눌려진 것처럼 그는 축 쳐진 모습으로 낡은 가죽 가방을 손에 쥐고 회사로 출근한다.



43살



충분히 승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의 능력이 부족했나 보다.



난 그의 미래도 과거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의 얼굴에 내비치는 것에서 몇 가지 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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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살핀다.


오늘도 역시 거래처 사람을 만나고 과장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젊은 사람 밑에서 가면을 쓴 채 그를 올려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맑게 아빠를 부르는 어여쁜 딸들이 있기에 절대 울상을 지을 수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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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놓자마자 과장에게 불려 가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과장의 미간이 마구 찌푸려져 있는 걸 보니 그리 좋은 대화는 아닌 듯했다.


자리에 앉는 동시에 그는 크게 한숨을 쉰다.





'그래,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몇 군데 통화를 하고 나서 이내 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선다.


이곳저곳을 들리며 인사를 하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는 가방에서 자그마한 선물도 꺼냈다.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은 내 눈에 매우 가식적인 모습이었다.






1시


꽤나 시끌벅적한 순댓국 집에서 나 홀로 배를 채운다.

이것도 어찌 익숙한지 그는 묵묵히 순댓국 한 그릇을 비워냈다.

이제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 그가 갑자기 벤치를 응시하다 털썩하고 자리에 앉는다.




푸석푸석한 피부를 손으로 매만진 후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다.

근데 이런, 아무리 몸을 뒤져봐도 라이터가 나오지 않는다.





입술 끝에 담배를 걸치고 그는 한동안 차가운 아스팔트 위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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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듯 난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

다만, 그는 지금 자신이 줄곧 걸어왔던 길이 지쳤음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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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돌아와 과장에게 짧은 보고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는 너저분하다.


이리저리 종이를 고르고 확인하는 것을 보니 이번 달 카드 명세서와 관리비 그리고 애엄마가 적어준 쪽지가 하나 있었다.





"수영이 수학 학원비 계속 내기 부담스러우면 우리 적금 하나 빼서 내도록 할게.

미영이 유치원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니깐. 조금만 더 고생하자 여보. 수고해"






요즘 세상에 딸 두 명을 남들 못지않게 키우려면 꽤나 많은 비용이 든다.

예전에는 외식도 자주 하고 가끔 애엄마에게 선물도 해주곤 했었는데



돈이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부부 사이도 많이 퍽퍽해졌다.



카드 명세서와 관리비를 펼치고 곰곰이 생각을 한다.

아마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 일 것이다.




"으흠"




옆에서 들려오는 과장의 눈치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서둘러 종이를 정리하고 모니터를 응시했지만 이미 많은 걱정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 뒤였다.



그는 묵묵히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었다.




"후..."








드디어 나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이 마른입을 벌려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내 눈에 그 탄식은 아주 진한 검은색이었다.

이걸로 그에게 기회를 주는 명분은 성립됐다.






오늘 밤






난 그에게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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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그가 홀로 술을 마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조금 취해버렸다.



머리와 넥타이는 이미 헝클어져있었고 양볼은 새빨갛게 물들어져 있었다.

애엄마에게 전화가 오지만 그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술잔을 목으로 넘겼다.



집에 가는 길에 다가가려 했건만.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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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아, 저기 혼자 한잔하시고 계셔서.. 저도 혼자 왔거든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한잔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아.. 예. 뭐.."



"여기 안주도 들고 왔습니다."



"아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여기 앉으세요 그럼."



"근데 혼자서 2병이나 마신 거세요?"



"허허.. 그러게요. 마시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안 좋은 일 있으셨구나?"






여기서 그는 멈칫했다.






"아니에요~ 사람이 살다가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한잔하고 푸는 거죠 뭐"



"그렇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죠. 이 술이 그나마 위로가 되잖아요."



"그렇죠. 이렇게라도 풀어야 내일 또 힘을 낼 수 있으니까."



"근데 우리가 왜 힘든 줄 알아요?"



"글쎄요. 다들 각자의 일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근데 모두 한 길로만 인생을 걸어가서 그래요."









여기서 나는 약간의 마술을 부렸다.


그의 머릿속에 여태 걸어온 길을 그려준 것.


그는 멍하게 그 그림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순수해 보이는지


어찌 됐든 그가 다시 현실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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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한 길로만 가는 건 있죠. 근데 어쩌겠어요?

이렇게 혼자 조용히 맛있는 안주에 소주 한잔 할 수 있다는 거에 행복해해야죠.

힘들긴 힘들지만... 뭐.. 허허. 자, 어서 한잔 받아요."



"네, 감사합니다."










이 술잔을 마시면 이제 그는 나의 곁으로 온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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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안녕하세요."



"당신은?.."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저 당신의 길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으니깐요."






여기는 그의 의식 안이다.


낡고 구불구불한 길 위에 두 갈래 길이 있다.


여기서 나는 그의 선택을 기다려 볼 셈이다.




그를 모르지만. 적어도 여기에 온 이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내려놓게 된다.







.








"당신은 너무나 삶을 곧게 살아왔습니다. 물론 당신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당신의 선택은 삶의 무게만 높였을 뿐

전혀 자신을 위한 선택은 없었습니다.

제 역할은 간단합니다. 당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

이제 두 갈래 길이 열릴 겁니다. 오른쪽은 원하는 미래로 그리고 왼쪽은 원하는 과거로.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비록 당신의 삶은 모르지만 당신이 내뱉은 검은 한숨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속이 많이 곪아있군요. 여기서는 마음껏 터트려도 좋습니다.

시간은 멈춰있으니 무슨 생각이든 해도 좋고요.

자, 그럼.."







.







두 갈래의 길이 열리고 펼쳐지니 그는 열린 입을 닫지 못했다.

하긴, 사람에게 이런 순간이 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






내 예상과 맞게 역시나 그는 무릎을 꿇었다.



흐느끼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내 선택에 대한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저는.. 아무런 잘못을 한 적 없습니다. 그저 아무런 탈없이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태 주위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절 생각해준 적이 있었던가요! 이런 내 인생은 무엇입니까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매일 울음을 삼키는 것도 지쳤습니다. 산다는 게 아무런 낙이 없습니다.

우리 딸과 아내가 제 유일한 버팀목이지만 정말 어디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가난했던 제가 이렇게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는지요.

아니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것을 원했는데 왜 이렇게 세상이 절 괴롭히는지...

힘듭니다. 정말 힘이 듭니다...

아버지... 저 정말 힘이 듭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왜 저한테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까..

힘을 주세요. 힘이 필요합니다. 이대로는 정말..."









거친 땅을 부여잡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


많은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울부짖으며 자신의 썩은 감정을 토해냈다.



사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저 길 앞에 토해낸 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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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셨나요?'



"아, 아직..."



"선택에 많이 힘이 드실 거예요.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까지의 기억은 모두 잃고 미래로 간다면 그 사이의 기억만 잃을 뿐 그간의 기억들은 다 머릿속에 있을 겁니다.

잘 감안하시고 선택하시면 됩니다."



"네."








그렇게 한참 그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건 괜찮다. 어차피 이건 내 일이니깐


난 사람들이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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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 지난 후 앉아있던 그가 드디어 허리를 폈다.


결정한 건가?








"결정하셨습니까?"



"......"



"시간은 많으니 신중이 생각하셔도 됩니다. 결정은 딱 한번밖에 못하니깐요."



"아니요. 마음이 잡힌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마지막 인사를 나눌까요?"



"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한결 낫네요."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 걸요. 부디 원하는 곳으로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어디로?"



"전..."



"네."



"전, 어디로든 가지 않겠습니다."



"네?"



"절 이대로 보내주세요."



"저기, 이건 정말 중요한 기회입니다. 선택을 하지 않겠다뇨?"



"어딜 가더라도 저는 지금의 가족과 바꿀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빨리 딸들이 보고 싶군요.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아..."







정말 아버지들이란..







"선택을 했으니 다시 돌려보내주실는지요?"



"네 물론이죠. 정 그러시겠다면야.."



"감사합니다."








이런, 제대로 한방 먹은 기분이다.


과거와 미래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니.








"가실까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꽤 당황스럽네요."



"아 그렇습니까? 제가 어리석은 걸 수도 있겠지요."



"가서 정말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네. 뭐 어떨 땐 후회도 하겠죠. 근데 제 눈앞에 가족들이 아른거려서... 그걸 못 참겠습니다."



"저로선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정말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전에 내려가서 우리 소주나 한잔 더 할까요?"



"아 그럴까요? 근데 딱 한 병만 더 마셔야 합니다.

오늘 닭 한 마리 사서 들어갈 생각이거든요. 아내한테 고맙다는 말도 해줘야겠어요.

허허 집이 벌써 그립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까 울었을 땐 정말 과거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제 안에 있던 것들이 전부 나오니 속이 시원하더군요.

행복은 제가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안일하게 기다린 제 탓이 큽니다.

가족,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해서 살 생각이에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네! 그렇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입니다."



"......"



"자, 그럼 제 손을 잡으세요."



"네."









나는 그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멋쩍은 표정을 짓자


그는 내 얼굴을 보며 커다란 미소를 지어줬다.






그래,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오늘은 나도 한잔 해볼까?








.








소주 한 병을 비우며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 또한 배운 점이 생겼다.




인간이란 정말 많은 이야기를 가슴속에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정의는 내릴 수 없다는 것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주는 길은 세 갈래 길이 될 듯 싶다.






하나는 과거


두 번째 미래


그리고 세 번째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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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닭을 손에 들고 가는 그의 마지막 뒷모습을 볼 때


그의 입에선 정말 하얀 입김이 나왔다.


정말 새하얀 입김이










한수 씨 파이팅














두 갈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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