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니스의 밤

3분만 앉아 쉬다 가세요.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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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밤의 테라스>
















니스의 밤
















이튿날

입고 있던 자켓의 등이 찢어졌다.

3년 동안 잘 입었는데 굳이 여행에서 안녕을 고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시계를 보니 4시 36분

남은 커피를 마시고 테라스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었다.


다시 니스 항구를 향해 걷는다.





오늘로 여기에 머문 날은 8일째다.

여행 계획에 분명 문제가 있지만 지중해를 끌어안은 이 도시는 날 보내주려 하지 않는다.

니스의 바다. 그리고 니스의 밤



도시에 매료된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내 여행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인연과 새로운 장면들을 경험하는 것이 나 혼자임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행이라는 건 나 자신을 극변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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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레스코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모래가 묻은 신발을 탁탁 털어내고 입구로 들어간다.

짧은 영어

카드로 방값을 지불하고 체크 인을 한 뒤 룸으로 가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아껴 썼던 여행의 마지막은 결국 아쉬움이다.

살아생전 이런 호텔에서 자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야.

궁상맞았던 내 자신을 생각하며 맥주를 마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벨기에 여자와 칵테일이라도 한 잔 더 마셨어야 했는데..




지갑에 남은 돈을 확인하고 외투를 들었다.

등이 찢어진 자켓




하나쯤 사도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프랑스의 마지막 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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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밤은 낮보다 강렬하다.


은은한 전봇대와 낮은 건물들이 뿜어내는 네온사인은 산책을 좋은 힐링으로 만들어준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는다.

이어폰을 귀에 꼽지 않는 이유는 이런 아름다운 도시의 소리를 단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다.




니스 법원을 지나 마세나 거리로 향했다.

어둑해지니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차 소리가 섞여 꽤나 시끌벅적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외롭다는 건 아니고.



셔츠만 입고 있어 추울지 알았는데 산들한 바람에 셔츠가 제격인 날씨다.



쇼핑은 그만 접기로 하고 일단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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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나 광장에서 버스킹을 구경하다

평소 마음에 들던 안경 낀 청년에게 10유로를 주고 왔다.

낡은 기타로 뿜어내는 현란한 핑거스타일 곡은 꽤나 감명 깊었다.


뒤돌기 전에 그가 보냈던 미소가 기억나네.


8일 동안 그 좋은 음악을 들려줘서 내가 더 고마운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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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발디 광장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그러다 발견한



빨간색 간판의 'Liens'




불어로 인연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보고 홀린 듯 가게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재즈 사운드가 좋은 탓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어깨를 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게는 고혹적인 'Bar'였다.

코발트블루색의 테이블과 빨간색 의자 그리고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수많은 촛불들

오늘은 여기서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텐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Bonsoir"



"Bonsoir"






프랑스에서 빠진 벨기에산 레페브라운 맥주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혼자인 사람이 있다면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는데

전부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있다.


인연이라는 간판 때문에 들어온 게 확실한데 이거 원...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멍하니 맥주잔을 비워냈다.

다이커리 칵테일을 한 잔 주문한 뒤 시계를 보니 7시 20분이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온 건 정확히 4분 뒤


문소리에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하얀 셔츠에 뒤로 묶은 머리 그리고 바다색의 치마와 구두

예쁘게 튀어나온 광대와 주홍빛 입술 옅은 색의 아이라인까지


이렇게 자세히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내 옆에 앉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일까?





침을 꿀꺽 삼키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바텐더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니 불어에 능숙하다.





"Hi"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난 여행객이니깐 충분히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녀가 날 보며 동그랗게 눈을 뜬다.





"Hi"




"어, 뭐라고 해야 하지.. where are you from?"




"어머 한국인이시구나. 반가워요."






여행 와서 처음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근데 지금 너무 반가운 거 알아요?"




"왜요?"




"여기 혼자 있어서 얼마나 심심했는지 몰라요. 뒤쪽에 보세요. 전부 친구나 애인이랑 왔나 봐요.

뭐 이런 곳에서 외로움 타는 건 멋없지만. 오늘은 조금 심심했 거든요."





여자는 뒤를 보더니 이내 쿡쿡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도 아마 전부 모르는 사람일 거예요. 여기 가게 이름 뭔지 아시죠?"




"네 Liens. 인연이잖아요."




"그럼 저기~ 액자 보이세요?"





그녀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가니 'For Stranger'이라 적힌 액자가 있었다.






"아.. 제가 소심했던 건가요?"




"그건 아니죠. 그래도 저한테 말 거셨잖아요."




"한국인 아니었으면 인사만 했을지도 몰라요."




"그럼 이 가게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하루라고 해요."




"저는 강혜선이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악수를 했다.


이토록 아리따운 여자를 프랑스의 마지막 밤에 만나다니

억울한 마음에 주먹으로 무릎을 쳤다.

그것보다 이름이 강혜선

강혜선 강혜선 강혜선

잊지 않기 위해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세 번 되뇌었다.





"근데 여행 오신 거예요?"





턱을 괸 채 날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네. 벌써 46일 차 네요. 니스에서 스트라스부르로 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8일을 머무네요."




"매력 있어서?"




"네. 다른 곳에 안 가도 될 만큼."




"이해해요. 저도 아미앵에 갔다가 다시 니스로 왔으니깐요."




"여행을 좋아하시나 봐요?"




"뭐, 일 년에 한 번은 꼭 가니깐요. 그쪽은요?"




"저는 워낙 즉흥적이라서요. 제대로 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인데 앞으로 많이 다닐 거 같아요.

혼자 오는 여행도 되게 좋네요."






바텐더가 그녀에게 칵테일을 건넸다. 서로 몇 마디 대화를 더 하는데 친분이 있어 보였다.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음.. 벌써 4번째네요. 이 칵테일도 생각나고 지금 흘러나오는 곡 너무 좋지 않아요?

이런데 있으면 꼭 욕조에서 반신욕 하는 기분이 든다니까요.

생각도 정리되고 새로운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고 재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긴 남자들이 많이 와요. 후후."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그녀는 내 눈에 가득 차지 못해 넘쳤다고 할 수 있겠다.

하얀 셔츠에 묶은 머리가 너무 예쁘다.


짧은 생각이었지만 이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했다.






"유럽에 와서 느낀 건 내가 못생겼다는 거예요. 여기서 누가 콧대 높은 젠틀맨을 이길 수 있을까요?"




"농담이에요. 어딜 가든 한국 남자가 그리운 건 모든 대한민국 여자들의 공통점일 거예요."




"그건 아닐 거 같은데요? 하다못해 이 앞에 바텐더를 봐요.

정갈한 턱수염에 저 진한 눈썹만 봐도 눈이 돌아가는데."




"그만큼 예쁜 여자도 많죠. 프랑스 여자들은 어떻던가요?"




"인사만 하고 알 수 있나요. 근데 생각해보면 다들 웃고 있었어요.

여기 사람들은 여유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3일 전에는 벨기에 여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환경운동가였어요. 어찌나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는지... 바디랭귀지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무조건 끄덕끄덕. 여러 대화를 나눴긴 한데 글쎄, 지금 친구들한테 내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한국 남자는 바보라고."




"후후 재밌네요."




"혜선 씨는 어때요?"




"으음.. 저는 로맨틱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기 남자들이 눈썹을 막 움직일 때마다 썩은 미소가 나오더라고요.

잘생겼고 매너도 좋긴 한데. 확실히 이질감이라는 게 있어요."




"그렇군요."




"근데 하루 씨는 여행 와서 느꼈던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좋지 않았어요?

아니면 여기 와서 속에 있던 것들이 갑자기 풀리진 않던가요?

전 그런 얘기를 나눌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 있어요.

근데 그런 감정적인 말들을 외국어로 말하지도 못할뿐더러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이야기하긴 싫어요.

그렇다고 한국 남자들이 잘 들어준다는 건 아니지만 먼 타지에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인연이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열정적이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을 길게 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이렇게 가만히 볼 수 있으니까.







"맞는 소리네요. 그래서 만났나요?"




"궁금해요?"




"물론이죠."





그녀는 칵테일 쭈욱 한 번 마신 뒤 내게 말했다.






"모르겠다 라고 말해두죠."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난 이미 당신을 만난 것에 이 여행의 모든 것을 걸 수 있겠는데 말이야

좋은 인상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가슴속에 담았다.





"숙소는 어디예요?"





시계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웨스트 앤드요. 바닷가 앞에 있어요."




"좋은 곳이네요. 저녁은 드셨나요?"




"네. 쓸쓸한 저녁식사를 했죠. 하루 씨는요?"





소리 내어 웃었다.

저녁을 안 먹었다면 같이 먹지 않겠냐고 물어보려 했건만 일단 실패다.


그것보다 지금 그녀의 삐져나온 검은 잔머리가 너무 예쁘다.

이 바에 온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토닥였다.





"저도 마찬가지죠. 바다가 옆에 있어서 망정이지.

없었으면 벌써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몰라요."




"그 마음 이해해요. 니스는 바다가 심장이니깐요."




"심장... 맞아요 심장. 바다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아마 죽었을 테죠."




"오랜만에 내 입에서 고급진 말이 나왔네요. 후후."




"웃겼습니다. 그나저나 혜선 씨는 오늘 계획 있으신가요?"





그녀의 태도 덕분인지 이런 시답잖은 멘트가 잘도 나와주었다.

그녀는 왼쪽 귀뒤로 잔머리를 넘기며 다시 시계를 쳐다보았다.

바쁜가..





"네.. 그래서 그런데 지금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꼭 보고 싶었던 게 있었 거든요.

늦으면 안돼서 얼른 가봐야 해요. 잠시 목만 축이러 온 건데 재밌는 대화했네요."





그녀는 클러치 백을 챙기며 바텐더에게 돈을 지불했다.

갑자기 이러면 정말 곤란한데..

역시 한 여름밤의 꿈인가





"아.. 네. 급하시면 얼른 가셔야죠."





차마 같이 가자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클러치 백을 팔에 끼우고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즐거웠어요 하루 씨."




"저도 즐거웠습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녀는 내게 등을 보였다.

뒷모습마저 아름답다니 결국 신은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신다.

어떡해야 하나..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고 이 바보야





"저기!"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내 의지와 상관없었기에 부른 나도 화들짝 놀랬다.

그녀는 구두 소리를 멈추고 다시 내게 얼굴을 비췄다.





"네?"




"실례지만, 어디 가시는 지 알 수 있을 까요?"




"음.. 비밀인데. 대신 힌트 드릴까요?"




"네. 뭐 그거라도."




"음악이요. 음악이 힌트예요."




"음악.."






음악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다시 나에게 오는 게 아닌가

나는 놀란 가슴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Si Dieu le veut, un jour on se reverra."






무슨 말일까?





나는 다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강렬함을 느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정확히 3분 뒤에 가게를 박차고 나왔다.



음악이라면 내가 아는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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