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감정 거래 -2

3분만 편히 쉬다 가실래요?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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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소설> - 감정 거래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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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나오니 제법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외로움 따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니


큰 숨을 한번 내쉬고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어둑한 골목길을 걷는다.


보름달은 마치 연극의 주인공처럼 그를 밝게 비추고 있다.


그는 진정 외로움을 버린 것일까?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아주 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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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는 사랑에 빠졌었다.

줄곧 사랑이라는 감정을 몰랐기에 모든 것에 미숙했고 또 들끓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랑해"라는 말이 낯부끄러웠지만 그녀에겐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하얀색 원피스가 잘 어울렸고 녹차를 좋아했다.

그녀는 살랑거리는 바람을 좋아했으며 밝은 색의 단화가 잘 어울렸다.

말랑거리는 볼을 매만질 때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볼에 바람을 넣었고

눈이 마주칠 때면 살며시 눈을 감고 그에게 키스를 원했다.

그때 그에겐 그녀가 곧 세상이었고 자신의 전부였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됐을까.



하얀 침대에서 그녀를 안은 채 그는 생각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백옥 같은 그녀의 뒷목에 짧은 입맞춤을 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무서웠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고 이내 그것은 집착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것이다.'

'나와 평생을 가야 한다.'

'네가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말들을 떠올리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그지만

누구에게나 이별의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3년을 만났다.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단 하루도 슬픈 적이 없었고

단 한순간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 후로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그녀를 한순간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이 했던 사랑이 줄곧 곧은 건 아니었기에

명확한 이유의 집착이 잘못인 건 후에 알았기에

그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던 자신이기에



울며 주저앉은 그녀의 모습을 차마 이해하지 못했다.



헤어지자.라는 말 한마디에

인생이 송두리 채 무너졌고 이렇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사랑한다, 잘못했다 수백 번 소리 질렀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지평선 너머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모든 것을 접어둔 채

이별을 부정했다.



그 부정은 곧 외로움을 잉태했고

메말라져 가는 감정은 그에게 포기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심어주기 충분했다.



감정 거래소



결국 그의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이 곳 감정 거래소였다.



감정의 방에서 나무를 심으며 썩어있던 모든 감정을 토해냈다.

커져가는 나무를 보며 가슴을 부여잡은 채 오열을 했고

가파른 숨이 안정되었을 땐 몽롱한 기분이 들며

초연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다신 사랑하지 않겠다 가 아니라

다신 사랑하기 싫은 그는 그렇게 외로움을 버렸다.




이젠 정말 나 자신만 바라보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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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낡은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위스키에 '용기'라는 감정을 담아버렸는데

그게 잘한 건지에 대한 아주 작은 의문이 들어서다.


그의 과거는 밝았지만 지난 3년은 너무나 어두워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어렴풋이 본 그의 마음에서 자그마한 불씨를 보았기 때문이다.


왜 사람은 사랑이 영원하다고 생각할까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사랑스러운 사람은 많은데 말이지.


그래서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사실, 그는 지난 3년 동안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했다.

이별 후에 자기 자신이 그녀 앞에 벽을 만든 것이다.

절대로 뚫지 못하는 아주 두꺼운 벽을


그녀가 먼 훗날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자가 순수하단 증거였고

주인은 그저 다시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외로움을 내놓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많은 것을 결여하고 있었음에


그에게선 썩은 감정만을 빼앗아버렸다.


아마 후련해할 것이다.

하지만 곧장 그녀가 생각 날 것이고

이젠 용기가 있기에 다시 손을 뻗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작정 이런 도박을 하는 건 아니다.

주인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확신이라는 게 있으니깐


그래도 엄연한 감정 거래소의 주인이다.



"건투를 빌어요 당신."



나지막이 내뱉으며 어깨가 축쳐진 다음 손님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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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다음 날


사실 그는 매우 화가 났다.

이토록 바랐던 외로움을 버렸는데

그녀 생각이 이렇게나 뚜렷하게 나다니


당장이라도 가게로 뛰어가 주인장에게 으름장을 내놓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그녀가 보고 싶다.


금세 눈꼬리가 내려가고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떨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데 지금 그녀가 일하던 곳으로 가면 얼굴이라도 볼 수있지 않을까

그저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은데 멀리서 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는 정말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했다.

마셨던 용기가 곧장 행동으로 나왔던 것이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그는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으며

아껴뒀던 옷을 입고 심지어 그녀가 좋아하던 향수까지 뿌렸다.


현관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벅차오르는 가슴에 숨이 파르르 하고 떨렸다.



"후.."



그렇게 3년 만에 자신이 만들었던 벽을 깨고 그는 그녀에게로 한 발짝 다가선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여태 하지않고 있었을까?

그녀는 매일 보고싶은 사람이었는데






바람이 좋은 날씨다.

그녀가 좋아했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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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일하는 카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는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다.


손님을 맞이할 때 짓는 웃음

그리고 직원들과 얘기할 때의 표정

큰 숨을 들이마시며 피는 기지개까지


어느새 그는 새파란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며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아주 뚜렷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별이 실감 난다.


난 3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널 사랑하는데

넌 한번이라도 내 생각을 해줬을까?


그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놀란 그는 황급히 코너를 돌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침을 꿀꺽 삼키고 이제 돌아가야겠다.라고 마음먹는다.


오늘은 이 정도로 됐어. 내일 또 오면 되지



그렇게 발걸음을 한 발짝 떼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 아리따운 목소리는


죽어있던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충분했다.



사랑



불현듯 찾아오는 건 이별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3년이 지나서야 다시 마주하고 말았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둘을 스쳐 지나간다.





아 아,

아름다워라





이젠 그녀에게

숨겨둔 당신의 마음을 조심히 꺼내길 바라며




어서 말해요 당신






































감정 거래소
















































P.S

모두들 잃지 말아요

우리 안에 살아있는 모든 감정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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