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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Jan 02. 2020

2020년 1월 1일 일기

2020


서울로 올라가는 길


1. 올해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큰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 당시 고난 앞에서 나는 한없이 약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버텨냈으니 그만큼 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약함과 강함의 크기는 무한하다. 아직 아플 일도, 행복한 일도 많을 테니 그냥 흘러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올해도 시간은 무심하게,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2. 상실에도 기술이 있었다. 그러니까, 잃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건 다가올 아픔에 대한 방어적 행동이며 어쩌면 생존 본능과도 같을 수 있다. 처음 느껴보는 상실감은 아파트 8층 높이의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마음을 단단히 굳게 했다. 나는 잃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그 사실을 인정했으며 얼굴로는 울면서 마음은 한없이 이성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건 고통의 연장선상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다. 

똑같은 아픔이 반복되다 보면 간지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올해 나는 여러 상실을 느끼며 어쩌면 조금 담담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런 나의 태도가 상처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성숙한 마음으로 상처를 받아들인 건진 모르겠다.


3. 서울에서 살아남아 깃발을 꽂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글쓰기 클래스와 출판사 운영. 카페 아르바이트와 에어비앤비, 대필 등을 하면서 불안정한 일상을 버텨냈다. 11월에 첫 책이 나왔고 클래스는 이제 10회 차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런 내게 마리끌레르 잡지 인터뷰가 들어오고 라디오 출현 기회도 찾아왔다. 내가 뭐라고.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걸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특히 교보문고에서 작고 강한 출판사로 선정해준 건 올해 가장 큰 성과였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하지만 이걸로 나는 더 고집 있고 당차게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깃발조차 들지 못했다면 올해는 깃발을 들고 언덕을 시야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울에서의 29살은 내게 서바이벌이다.


삶의 흔적


4. 이틀 전은 아버지의 두 번째 제사였다. 아직 서툴러 실수도 많았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올려놓고 마음속으로 그동안 하고 싶던 이야기를 건넸다. 상투적이지만 아빠는 들어줄 것 같았으니까. 

집에는 우리 가족이 함께 였을 때의 사진이 곳곳에 놓여있다. 작년에는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지만 올해는 몇 초 동안 그들을 응시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진다. 이건 이별이 선물해준 마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엄마와 누나가 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책임감과 마음이 중첩되니 이렇게 쉽게 희생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5. 제 나름대로의 시간이 있듯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해 나를 다독이며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라는 것에 묶여 살면서도 시간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다. 어제와 오늘. 하늘로 올라간 수많은 다짐이 부디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누구보다 순수하게 기도했던 당신이었을 테니까.  


6. 2020년에는 조용한 겨울바다처럼 안정되고 고요하고 묵묵한 날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노력은 배가 될 것이고 더 좋은 성과가 찾아와 내게 안정을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마음을 넓혀 좋은 관계도 만들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건 결국 사람이 전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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