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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Apr 08. 2020

단어에도 죽음이 있다

작가의 마음




단어에도 죽음이 있다. 

의고체는 이제 쓰이지 않는 단어로 희곡이나 소설에서 상황의 무게와 독백의 색을 짙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인데 특수한 문맥에 의도적으로 사용해 독자를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버려진 단어. 페어나 사어로 불리는 것들. 

이런 문체를 통해 작품을 살리는 것을 의고주의라고 하는데 나는 사어를 주우러 다니는 시인이나 철학자를 볼 때마다 기묘한 느낌을 받곤 했다. 주름진 손바닥 위에 생명력을 잃은 언어의 가슴팍에 숨을 불어넣는 예술가는 무언갈 잃은 사람처럼 애처로웠고 물기에 젖어있었다. 


창작의 경이로움이자 서러움. 

시가 두터운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서사도 모르는 어느 작가의 글에 숨을 멈추고 눈시울을 붉혔던 건 그가 살리고자 했던 단어에 대한 마음을 불현듯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맑은 날의 계곡처럼 수수히 흘러가고 잘 읽히는 글도 좋지만 가끔은 난생처음 보는 단어들이 얽혀있는 글도 좋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독자의 행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예술의 가치를 느끼게끔 한다. 

단어에도 죽음이 있다. 하지만 단어에 장례는 없다. 

나는 그래서 글을 사랑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손에서 반드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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