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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Nov 10. 2021

약속 시간에 30분 일찍 도착하는 마음

사랑은 고대 권태는 기다림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나 그때 신호등을 꽤 오래 기다렸어요.'라는 말이었다. 기다림이라는 건 마음에 의해 무게가 달라진다. 그것이 만약 사랑이라면 기다림은 깃털이 되고 거기에 권태가 보태지면 큰 바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매번 고대였으니 당신을 기다리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일주일 만에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일주일이 내겐 지옥이었지만) 나는 약속 장소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당신과 마주할 신호등 앞을 서성였다. 건물 외벽에 비친 흐릿흐릿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를 매만졌고 코트에 묻은 먼지를 떼어내고 손등에 남은 향수의 잔향을 맡은 뒤, 가슴을 열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신호등 건너편에 당신이 도착하면 우린 서로를 보고 손을 흔들겠지. 그때 짓는 백옥 같은 미소가 보고 싶어 부푼 마음에 이리도 빨리 집을 나선 것이다. 


저기, 당신이 보인다. 포근한 베이지 코트에 옆으로 멘 가방 그리고 나를 보며 옅게 입꼬리를 올린다. 플랫 화이트와 따뜻한 샤브샤브 그리고 헤어지기 전 짧게나마 당신을 안고 조심해서 가라는 말을 했을 땐 모든 임무를 완수한 기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더 사랑받고 싶어 '나 아까 그 횡단보도에 30분이나 일찍 와있었어요'하고 칭얼거리고 싶었지만 그건 하나의 어리광에 불과할 테니 훗날에 얘기하기로 다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 때. 그리고 많이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편히 말할 수 있을 때 말이다. 

마음이 점점 더 부풀어 올라 뒤꿈치가 올라가는 오늘, 나에겐 행복한 기다림이 있었다. 찬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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