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하영 Dec 16. 2021

혹시나 몰라 무언갈 남겨놓는 마음

이런 사랑인가 봅니다.


혹시 몰라 남겨놓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나는 그런 마음이 좋다. 혹시나 몰라 무언갈 남겨놓는 것. 그러니까, 허기가 져 그릇을 다 비워내도 되는데 나중에 배고플 누군가를 위해 일부를 남겨놓는 마음이. 누군가의 배려는 일상의 냉기를 단숨에 데워주기도 해 나에게 종종 필요한 감정이었다. 클래스를 진행할 때 나는 작가들의 컵을 여러 번 살핀다. 잔이 비었다면, 작가님에게 "한 잔 더 드릴까요?" 하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만들어 놓은 커피는 정해져 있기에 잔을 가득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홀로 가늠을 해본다. '저 작가님도 잔이 곧 빌 것 같은데' 하면서 여분의 커피를 남겨놓는 것이다. 나야, 물만 마셔도 좋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남겨두었던 커피가 그대로였지만 속상하진 않았다. 저기 유리병에 식어있는 커피가 당신이 나를 위해 무언갈 남겨두었던 사랑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함께 먹으려고 산 과자를 찬장에 넣어두는 것. 식당에서 상대의 식사 속도를 맞추는 것.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위해 무언 갈 구비해두는 마음은 이 찬 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이겨낼 수 있게끔 해준다. 


남겨놓는 것은 또 다른 말로 기다리는 것이다. 늦은 하교 후 배가 고파 허겁지겁 찌개와 밥을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저녁에 김치찌개를 조금 남겨 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큰 고기 몇 조각도) 이런 마음은 친구나 연인에게도 여실히 적용되지 않던가. 늦은 사람을 위해 자리를 하나 비워두고, 조금 늦게 젓가락을 들고, 종이가방에 작은 선물을 들고 오는 건 우리 일상 곳곳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을 기억해두고 다시 그 온기를 돌려주는 것이 참 중요한 것이다. 


책상 위에 있는 커피가 남아있지 않아도 좋고, 남아있어도 하나도 속상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게 그저 좋았을 뿐이니까. 나는 살아있고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많은 것을 남겨놓을 것이다. 오래된 관계를 보면 이런 가벼운 희생이 곳곳에 묻어있더라. 관계의 밀도를 올릴 수 있는 작은 이유 하나를 찾았다. 

(야호-!)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같은 사랑은 하지않아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