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하영 Apr 28. 2022

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용기


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넋을 놓고 지하철을 탔을 때나 키보드를 쉬지 않고 치고 있을 때 갑자기 뇌를 장악해 버리는 것. 예를 들면 그 사람의 미소나 전에 맡았던 바람 냄새, 회의 맛, 재즈 소리 같은 게 있겠다. 좋아하는 것을 마주할 땐 무뎌졌던 감각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 존재를 모조리 흡수하고 싶어 오감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악하든 말든 무언가에 빠지게 되면 사람은 바보가 돼버리고 만다. 그러면 말은 또 얼마나 많아진다고. 친구를 만나면 "내가 말이야 '이거'에 빠졌는데 진짜 미쳤나 봐" 하며 수다쟁이가 된다. 근데 그 모습이 추하거나 밉지 않은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다. 원래 바보 온달 같은 사람이 더 사랑받기 마련이니까. 


그게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면 유치원생처럼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모습을 보인다. 아, 이 과정이 얼마나 좋은지, 가끔은 일과 잠을 제외한 무언가에 흠뻑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대게 자본이 필요하고 넉넉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현실을 자각하고 욕구를 고이 접어 다시 서랍 안에 넣어두는 것이다. 이 안타까운 순환 속에서도 가끔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종의 선전포고랄까?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고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직업이 바뀌기도, 삶이 변화하기도 한다.


나는 먼 훗날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언젠가, 낡은 바에서 연주하는 재져처럼 자유롭게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구현해보고 싶다. 시간과 통장잔고가 내게 허락을 해줄 때를 기다려야겠지만, 방금 말했던 선전포고처럼 나 자신에게 '나 피아노 배울 거야'와 같은 의지도 필요하리라 본다.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마다 난 무언가에 빠져있었다. 온갖 불행이 날아와도 '그것'만 있으면 마냥 볼에 홍조를 띠던 시절은 당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요즘 무엇에 빠져있는가. 글을 지독히 사랑했지만 글은 이제 업이 되어버렸는 걸. 쓰는 행위를 무척이나 아끼지만 다른 무언갈 또 사랑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요즘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무엇에 빠져있는지. 우리는 또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람 저한테 참 귀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