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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Aug 25. 2022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영화 <클로저> 中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요 8~9년 동안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내뱉었던 나는 사실 그 질문에 멈칫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뭘까.' 답을 말해주지 않으면 실망할 게 분명하니 사랑은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벌써 6년째 우려먹고 있는 사골 멘트다.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뭔가 개의치 않은 표정이다. 그러면 나는 역으로 질문한다.


“사랑이 뭔가요? 아니, 사랑은 뭘까요?”     

상대방은 입을 뾰족 모으고 눈동자를 올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취한다. 그러고 내뱉는 말들은 제각각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고 금방 또 잊을 수 있었다. 만약 사랑에 답이 있었다면 우린 연애 따위 하지 않고 살았을 게 분명하다. 쉽고 정해져 있는 건 흥미가 없을뿐더러 가치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랑은 불특정 한 사연을 만들어내기에 자신만의 뜻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사랑의 정의를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랑만큼 방대하고 쓰기 좋은 글감은 없었다. 인생이라던가 실패 같은 주제에 대한 글을 써봐도 결국엔 사랑이 종착지였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쓸 때는 마치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의 마음이었으니까.

당신에게 고통과 쾌락이라고 사랑을 정의했지만, 나는 이 주제를 두고 아주 농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치열한 공방을 통해 상대를 납득을 시키고 설득당하는 사이에 우리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상하지 않기로 한다.    




영화 <클로저> 中



사랑의 종류는 딱 지구상의 인구수만큼이라는 글이 기억난다. 각자의 경험을 다발을 짓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이처럼 우리의 인연은 매일 달라지기에 모든 사랑의 결은 다르고 서사 또한 특별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정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끊임없이 고찰하며 나만의 잣대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날 만난 누군가와 세계관이 같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건 기적 같은 일이기에 그 차이점에서 스파크를 튀기며 새로운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고집불통도 좋지만 가끔은 점토처럼 무너졌다 다시 모양을 만들어가도 된다. 사랑이 하트 모양이여만 하는 사람은 결국 시시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만들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낯선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 그동안 느꼈던 사랑은 초콜릿처럼 달콤한 것이었지만 분명 레몬 같은 것도 있었으니 다른 맛도 슬쩍 기대해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될지 모르니 결과를 먼저 점치는 것보다 한치 알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감히 기다려본다.     

달콤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내게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 돼버렸다.

이것에 나는 슬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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