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아픔 생성기 4편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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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생성기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세월에 비례하게 그의 얼굴엔 하나 둘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고

아픔이 가득한 마음은 남은 공간 없이 그대로 그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걸작을 남겼지만

그에게 명성과 돈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젊을 때와 달리 많이 수척해진 그다.




넓은 방


주홍빛 노을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그는 지금 혼자임에 분명했다.

이제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행여나 그 사람이 완벽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더 이상 그에게서 생기지 않은 감정이었다.

사랑은 아픔이 두려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쳤다.



그는 오늘도 많은 예술을 잉태한다.

소설을 쓰기도 하고 붓을 잡기도 했으며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제 무슨 의미가 있으리



몸은 움직이지만 이것이 자신의 남은 인생에 필요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똑똑





집사가 조심스레 문을 열며 들어온다.






"XX님 오늘 베이커 예술재단 회장님과 저녁 식사가 있습니다.

6시 30분까지 차 대기시켜놓겠습니다."





"그래요."





집사가 고요함을 깨준 탓에 다행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은 5시 3분

남은 차를 단숨에 비우고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셔츠 단추를 채우며 조용히 그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향기가 나는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방금 차를 마셨음에도 입술은 금방 말라있다.


이 갈증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두운 색의 재킷을 입으며 막연한 생각을 한 그다.








.









H시티로 향하는 노스탤지어 대교 위



아름다운 이 세상에 맞는 가장 순수하고도 멋진 감정이 바로 사랑이 아니었던가

그는 집에서의 생각을 이어가며 옅은 회색빛 미소를 지었다.



나의 옛사랑아.

그것은 아주 먼 옛날 자신의 첫 작품과 맞바꾼 아리따운 한 소녀였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가 어울렸으며 연갈색의 머리에선 항상 로즈메리 향기가 났다.




그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

지독한 사랑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건 자신에게 너무나 큰 사치라고 생각하는 그다.

아픔만 가득한 그에겐 그리움조차 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사랑 앞에선 늘 후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책에 적은 짧은 한 문장이 떠오른다.








.








어두운 표정

매스컴, 그 밖의 공적인 자리들.



그는 옛날의 그 혈기왕성한 표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누군가는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리까지 했다.

괴소문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을 아픔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픔으로 이 자리에 있음을 실감해야 한다고 늘 자신을 다그쳤다.

그에겐 아픔은 보물이었고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날이 이제 자신에게로 돌아선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매번 그래왔듯이 꾹꾹 참아낸다.

세상 모든 감정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시군요."




"그런가요? 바람이 차가워서 그런가 봅니다."




"하하. 그런가요. 아무쪼록 이번 작품 마무리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네. 다음에 또 뵙도록해요."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차에 몸을 실었다.






"식사는 어땠습니까?"






그의 기사가 고개를 돌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참치회가 참 맛있더군."





"아하,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걸 준비했군요."





"안드로센."





"네."





"U시티로 가지."





"U시티라면?"





"잠시 들려야 할 곳이 있다네."





"시간이 늦었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네. 날 내려주고 자네 먼저 가게나.

오늘은 친구와 대화가 길어질 수도 있어서 말이지."





"아, 네. 알겠습니다."





"고맙네."









.










U시티


아픔 생성기가 있던 곳


그는 그곳을 배회하며 검은색 시가를 태운다.

잠시 소나기가 내려 도시 전체가 물을 머금었다.

여러 개의 공장 굴뚝에선 습기에 맞게 아주 짙은 매연을 뿜어내고 있다.

담배를 끄고 깊은 골목을 거닐어 본다.

추억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 곳은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XXX."






그를 부르는 한 여자의 목소리

고개를 돌린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적지 않아 놀랐다.



어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그녀






"당신은..?"





"날 기억하는군요."





"페러나이 그린?"





"후후. 이거 영광인데요?"





"여긴 무슨 일이죠?"





"당신이야 말로 이곳에서 뭐 하고 있나요. 후회라도 하고 계시나?"





"전 그냥.."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이네요."





"아닙니다. 그냥 가벼운 산책 중이었어요."





"후후. 일단 어디론가 가는 게 어때요? 나 당신에게 줄 선물이 있으니까."






-또각 또각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그다.


자석같이 끌렸다.

그리고 다시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탄 검은색 레트로 풍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는 어딘가를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아픔 생성기 마지막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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