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U시티에서 대륙 끝에 있는 B 시티로 열심히 속도를 냈다.
자동운전 모드로 설정했기 때문에 둘은 끊기지 않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주 어두운 밤의 질주였다.
그녀의 이름은 사실 페러나이 그린이 아닌 매서린 호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절차를 가혹하게 받은 탓에 여러 가지 정신병에 시달렸었다고 했다. 페드릭 회사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거대 기업이었다.
아버지인 페드릭 머독 또한 가짜 이름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는 냉철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업을 위해 인간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했고 개명을 하고
사회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여러 기업을 인수해가면서 세계 최고의 건설 기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야망이 넘쳐 하나밖에 없는 딸인 매서린 호웰을 강제 개명시키고 매스컴에 내보냈으며
어린 그녀에게 아주 가혹적인 세월을 보내게 했다.
다 미래를 위한 명분이라고 한 아버지였다.
비싼 옷, 비싼 음식, 비싼 차
그녀는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들은 다 부질없는 것.
그래서 찾은 기억 생성기 기업이었지만 아픔 생성기를 본 후에 이런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모든 것을 아픔으로 덮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때부터 그녀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29살 때 패트릭 머독이 돌연사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었다고 한다.
이미 아픔으로 가득한 자신이 너무나 싫어 모든 걸 내려놓았다.
다시 인간적인 모습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아픔으로 뒤덮인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남은 인생은 너무나 많이 남았기에.
그때부터 그녀는 독서와 여행을 하며 자신의 조각을 조금씩 되찾았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마음은 그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습니까?"
"어때 보여요?"
"밝아 보입니다. 돌아온 거 같군요."
"맞아요. XX 씨."
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실낱같은 희망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전 당신의 모든 글과 음악 그리고 그림을 섭렵했어요 XX 씨.
근데 어느 순간부터 손끝에 힘이 빠진 느낌이 들었달까요?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그 안절부절못한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에 대한 초연함만 남은 게 분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랬으니깐요. 아마 당신은 저보다 더 많은 기억들을 삽입했겠죠.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그는 그녀의 말에 숨이 막히고 말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명예와 돈을 선사해준 아픔을 마다하고 나만의 길을 걸을 것인가
만약 그랬다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고민하시는 걸 보니 역시 어려운 문제군요."
"돌아갈 수 있다면 아픔 따위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왜죠?"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냥 제 인생을요."
"좋아요. 그거면 족해요.
전 당신이 마음에 든답니다. 세상천지에 당신과 나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영웅심리는 아니지만 우린 아픔을 받아들이고 정말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힘들겠지만 돌아가고 싶다면 지금 모든 걸 버리셔야 해요."
"모든 걸요?"
"네. 저흰 아주 먼 곳으로 떠날 거예요.
언제 돌아올지는 당신 몫이겠지만 그때까지 내가 곁에 있어줄게요."
"어째서 저에게 이런 일을 해주시는 겁니까?"
"말했잖아요. 전 당신이 마음에 든다고.
스토킹도 조금 했어요. 이거 꽤 재밌던데요? 그러다가 오늘 기회를 잡은 거죠.
이 나이 먹고 당신한테 좋아한다고 들이미는 것도 웃기잖아요?
당신은 열정적인 사람이에요. 이제 그것을 자신에게 한번 써보세요.
거절하신다면 저야 슬프겠지만 이건 아주 매혹적인 제안임에 확실해요.
자, 이제 어쩌실 건지 제게 말해줘요."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제안을 들으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주 짧지만 깊은 고요함이 지나갔다.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진하게 매만지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꽉 차 있는 마음에서 아픔이 세어 나오는 한숨이었다.
"어디로든 좋습니다. 제게 와줘서 고마워요 호웰."
그와 그녀는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실로 오랜만에 짓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에겐 희망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암흑 같은 곳에서의 한줄기 빛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힘을 만들곤 한다.
그는 방법을 몰랐다. 줄곧 의지만 해온 탓에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픔은 시간에 의해 잊힌다.
상처의 크기는 결국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의 척도는 바로 자기 자신만의 기준이다.
단단히 묶여있던 줄은 풀기 어렵지만 날카로운 가위 질 한 번이면 쉽게 잘라져 나간다.
그녀는 방법을 몰랐던 그에게 선뜻 가위를 내밀어주었다.
이제 그의 용기만 남았다.
바다로 향하는 차 안
좁은 차 안에서 둘은 친구가 됐으며 사랑의 문을 향해 한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마음을 비워낼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마음의 병은 불치가 아님을 확신한다.
그의 인생을 삼킨 기계적 오류
감성시대에서 가장 모순적인 행동을 했던 그
그 죗값이 사랑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었다면
이제 그의 형량은 끝이다.
거대한 평야를 달리는 그들
아무도 없는 그 고요한 곳에선
아주 자그마한 웃음소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픔 생성기
p.s
드디어 아픔 생성기를 끝마치네요.
이 작품이 이렇게나 길게 이어지고 애를 먹일지는 상상도 못 하였는데.
어쨌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주인공은 다시 자신의 인생을 찾았을 거예요.
가공된 것은 분명 유통기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에서도 가공된 것이 있다면
우린 그것을 항상 인지하고 올바르고 순수한 자신만의 감정을 지니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는 분명 그녀와 행복했을 겁니다.
밀린 영감들이 많아 얼른 돌아온다고 약속하죠.
읽어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