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갈 깊게 경험해 본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더더욱.
어느 하나에 몰두하여 사력을 다해본 경험은 삶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동시에 철강처럼 단단하게 만든 건 모두 내가 사랑했던 것이 아닌가. 그들의 이야기에는 항상 미묘한 흥분과 스펙터클한 사건이 있다. 생동감 있는 단어로 "그래서 제가 말이죠"라는 말을 하면 동화극을 듣는 아이처럼 바지춤을 꼬옥- 잡게 된다.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그간 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도중 '처음'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멀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내 연인의 모든 것이 내가 처음이었으면 하는 마음. 능수능란한 것보다 서툰 게 더 좋은 욕심 말이다. 하지만 뭐든지 경험해 보아야 잘할 수 있다. 다정한 것은 유전이 아니라 습득이며, 상처를 받아보아야 사랑을 알고 손을 건네보아야 배려를 안다. 사색하는 나조차 이리 서툰데 뭐 그리 순수한 것을 바랐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의 경험을 유심히 바라보려고 한다.
어쩌면 물이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순수함을 쫓다 현실을 보지 못한 경험이 수두룩하니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무르익은 것을 애정하는 나로선 성숙한 것에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이든 술이든 좋으니 낡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경험을 진득하게 나누는 생각을 해본다. 경험을 나눌 때 마음은 열린다. 나는 앞으로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2023년 06월 01일
순수함보다 때 묽은 흙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