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니스의 밤 마지막 이야기

3분만 앉아서 쉬다 가실래요?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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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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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땐 온몸이 무거웠다.

새벽 내내 그녀 생각에 몸을 뒤척거린 탓이었다.

커튼을 치고 기지개를 켠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시계를 보니 7시 46분

서둘러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음악을 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내가 부르고 있으니깐


그나저나 이 호텔 서비스 장난 아니라던데

어떻게 한번 느끼지도 못하고 나가게 생겼네.





.






호텔을 나서니 니스에 완연한 아침이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앤티크 한 자동차 그리고 멀찍이 보이는 바다

모든 걸 눈에 담으며 메인 스트리트로 향했다.

정말이지, 가벼운 발걸음이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여행을 실감했다.

혼자인 여행에서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다는 게 이리도 설레는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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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리아 거리 쪽에서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았다.

몇 번 고르다 연하늘색 셔츠와 베이지색 재킷을 샀다.

마주하고 있는 거울 속에 나는 배시시 웃고 있다.

아마 10시가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머리는 묶으려나? 푸는 게 좀 더 예뻤는데

파스타 먹으면서 무슨 얘길 하지?


이런 상상을 하며 파스타 가게로 향한다.

시간은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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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50분에 도착을 하긴 했다만 그녀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게 앞에 그녀가 서있는 걸 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녀는 매번 날 뛰게 한다.





"일찍 오셨네요. 후하"



"뛰어왔어요?"



"네. 10분 전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벌써 와있으면 도대체 언제 온 거란 말이에요?"



"그냥 산책하다가 일찍 왔어요. 그래도 빨리 오셨네요?

55분이라도 되면 실망해버릴 거라고 다짐했거든요."



"정말요?"



"후후 농담이에요.

얼른 들어가요. 저기 명당 비었으니깐."






가게 이름은 'monsieur'

그녀에게 물어보니 아저씨라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게에 들어올 때 복슬복슬한 턱수염 아저씨가 해맑게 인사를 해주었는데.

니스의 키 큰 턱수염 아저씨가 해주는 파스타라고 생각하니

뭔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가게 분위기는 식물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연두색 접시에 연두색 포크 그리고 연두색 테이블까지

창가 쪽으로 들어오는 햇살 덕분에 가게 분위기는 정말 따스했다.


우리는 쉬림프 오일 파스타와 해산물 모둠 튀김을 주문했다.

아,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와인도 한 잔씩





"잠은 잘 잤어요?"





예쁘게 팔짱을 낀 채 그녀가 물었다.

참고로

그녀는 오늘 파란 스프라이트 티셔츠에 하얀 카디건을 입고 왔다.

니스와 정말 어울리는 여자다.





"글쎄요.. 잘 자진 않았는데 기분 좋은 밤을 보냈다.라고 해두죠."



"저는 정말 뻗었는 걸요? 어제 좀 마셨나 봐요.

더 자려고 했는데 머리가 아파서 일찌감치 나와버렸어요."



"잘했네요. 지금은 괜찮아요?"



"니스는 정말 최고의 도시예요. 무슨 산책이 약이야.."



"하하 맞아요. 여기선 펄펄 날아다닌 기억밖에 없어요."



"그쵸? 여긴 꼭 다시 올 거예요.

대신 다음번엔 누구랑 같이."



"저도 마찬가지예요. 다음번엔 동행인이 있을 거예요 무조건."





암묵적인 애정표현이었다.

그녀가 말한 누군가가 나는 아니겠지만

난 저런 말을 들으면 왠지 오기가 생긴다.

내가 그 누군가가 되고 말겠어!라고 말이다.


15분 정도 지나니 음식이 나왔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기분은 왤까?

줄곧 혼자 잘 먹고 다녔는데 말이야.


니스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아주 재미있는 식사를 했다.


그녀는 매 순간순간을 섬세하게 기억하는데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꼭 비포 선라이즈의 남자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완성된 가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음.. 여기 나사를 잘 못 박았네 뭐 이런 거?"



"에이, 그건 되게 무드 없네요. 누군가는 내가 만든 이 가구를 평생 쓸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안 들어요?

내가 너무 낭만적인가?"



"아니요. 처음엔 그런 생각했죠. 충분한 로망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깐 그저 생업이 되더라고요. 만약 사연이 있으면 모를까."



"그럼 제일 인상 깊었던 사연은 뭐예요?"



"음... 전 여자친구한테 생일 선물로 준 의자요. 만드는 데 한 달 정도 걸렸거든요?

독립영화를 찍는 여자였는데 프랑스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 덕에 제가 유럽 가구점을 많이 돌아다녔죠.

영화에 어떤 백작 집이 나왔는데 거기에 나오는 의자를 갖고 싶다 했거든요.

생일 선물로 만들어 달라는 뜻이었어요. 의자 줄 때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내가 만들어 달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 말을 듣는데 이거 안 만들었으면 큰일 났겠구나 싶더라고요.

근데 그 의자 지금 저희 집에 있어요. 헤어질 때 다시 받았거든요."



"재밌는 사연이네요.

근데 그 의자 되게 궁금하네.. 다음에 한 번 보여주실래요?"



"물론이죠."



"근데 하루 씨는 눈치가 빠른가 봐요.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거 정말 못 알아차리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만들기였으니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하여튼 보통 경험이 아니시라니깐."






파스타 접시를 치우고 디저트로 푸딩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많은 대화 덕분에 소화도 잘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늘 저녁 7시 코트라 쥐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넉넉하게 가려면 5시에 출발을 해야겠지만 시간은 벌써 오전 12시를 향하고 있다.

5시간은 결코 내게 많은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차분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이 오면 내 마음을 꼭 표현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니까





"근데 오늘은 머리 묶으셨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요. 머릿결이 안 좋아서 머리카락에 맞으면 아파요."



"근데 푼 게 더.."



"푼 게 더 예쁘다고요?"



"아니에요. 지금은 지금대로 예쁘니깐요."



"풀으라는 소리 구만!"





그녀는 물고 있던 포크를 탁, 하고 내려놓곤

코끝을 찡그리며 머리를 풀었다.

은근 말도 잘 듣는다.


스르르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고혹적인 목선을 드러내며 머리를 만지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예뻤다.

실제로 한효주가 떠올랐으니깐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가?

다시 팔짱을 강하게 끼곤 나를 빤히 쳐다본다.





"됐어요?"



"네."



"예쁘다고 안 해요?"



"예뻐요."



"참.. 보람 없게."


"예쁘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한 거 같아서요."



"예쁘면 예쁘다고 하면 되죠. 그런 거 아끼는 거 아니거든요?"



"겉으로만 아끼고 있어요. 걱정마요."






종종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다.

그녀와 이틀을 만났지만 속 깊은 대화를 한 탓인지 벌써 친하다는 느낌이 든다.

같이 있음에 즐겁고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저 하얀 볼을 꼬집어보고 싶다.



그녀는 오늘 파리에 간다.

아마 같은 공항을 갈 텐데 시간이 맞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저는 7시 비행기예요 혜선 씨.

혜선 씨 야간열차는 안 타실 거 같은데? 몇 시 비행기예요?"



"저 9시 30분 비행기요."



"코트라 쥐르 맞죠?"



"네. 하루 씨도 코트라 쥐르잖아요. 같이 가요."



"아.."



"왜요?"



"왜 자꾸 제가 할 말을 먼저 하세요."





저돌적인 건 아니지만 침착하게 들어온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렇게 돌리고 돌려 말하는데 어찌 한 번에 그리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뻤다고 볼 수 있겠다.





"중간에 자잘한 질문만 빼면 저보다 빨리 말할 수 있겠는데요?"



"참고할게요.

그럼 지금이 12시 23분이니깐. 5시쯤 출발할까요?"



"좋아요.

이제 나갈까요?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안에 있는 건 범죄라고요.

그리고 오늘은 니스의 마지막 날이잖아요.

한 컷이라도 눈에 더 담아야죠."



"맞아요. 그럼 마실 거 사서 바닷가 가요."





결제를 하고 턱수염 아저씨와 악수를 했다.

뭐라고 하시는데 그냥 미소만 짓다가 나왔다.

뭐라고 한 걸까?



밖으로 나오니 쾌적한 오후의 바람이 분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잘 먹었어요 하루 씨. 고집불통이네요."



"여행 마지막 날이라 억지로라도 돈을 써야 돼서 말이죠.

한국 가면 맛있는 거 사주세요."



"좋아요."





근처 카페에서 레모네이드를 산 뒤 곧장 바다로 향했다.

어제보다 날씨가 좋은 탓인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나저나 당분간 보지 못할 에메랄드 빛 바다다.

돌아가면 다시 나무 먼지 날리는 생활을 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니스에서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혜선 씨. 저 여기서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네. 그럼 찍고 저도 찍어주세요."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준 뒤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남자는 역시 엄지 척 자세가 최고다.





"혜선 씨 핸드폰으로 거울 보지 마시고 얼른 찍어줘요."



"알았어요~ 자, 이제 찍어요."





찰칵찰칵

몇 번의 셔터 소리를 통해 가슴속에 니스를 담았다.

사진을 찍고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3시가 다되었다.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나는 안절부절못하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다.





"이제 어디 갈까요?"



"그냥 안 가본 골목길 가요. 근데 짐은 어디 있어요?"



"호텔 프런트예요. 바로 가지고 오기만 하면 돼요."



"저도요. 그럼 걷다가 각자 호텔에서 짐 가지고 보기로 해요.

지금은 그냥 이곳저곳 걸어요."



"네."



"근데 하루 씨. 혹시 미드 나잇 인 파리 봤어요?"



"네 봤죠."



"그럼 영화 내용 기억하겠네요.

전 아드리아나 역할 할 테니깐 하루 씨는 길 역할해요."



"근데 우린 과거로 갈 수 없는 걸요?"



"음.. 그래도 좋아요.

그냥 그 영화처럼 골목을 다니면서 대화할 수 있는 게 좋아서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긴 프랑스잖아요.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전부 낭만이에요."





이럴 땐 꼭 소녀 같은 그녀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상황극은 아니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린 니스 곳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냈다.

많은 대화와 그녀와 마주친 눈길들은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향한 마음은 정말로 진심이었으니깐.

급하게 굴 수록 뒤로 멀어지는 인연은 인생을 살며 배운 지혜다.



4시 30분쯤에 각자의 호텔로 돌아가 짐을 들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말없이 창 밖을 봤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이제 마지막 순간을 향해간다.

단순히 여행에서의 인연인지 아닌지는 확답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용기를 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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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표를 받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했다.

어느 순간 여행에 대한 미련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가방을 정리하는 그녀 모습을 보며 다시 마음을 잡았다.

비록 내 여행의 마지막이 당신이지만

당신은 이미 내 여행의 전부가 됐다.



시계는 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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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가야겠어요."




꼬았던 다리를 풀며 내가 말했다.





"7시 비행 기니깐 게이트 가셔야겠네요.

설마 배웅을 바라는 건 아니겠죠?"



"어떻게 어리광을 피우겠어요? 파리에서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랄게요.

밤길 조심하고요."



"그런 건 이제 안 무서워요."



"강해서 좋네요. 오늘도 정말 재밌었어요."



"정말요?"



"네."



"저도 즐거웠어요 하루 씨."





백팩을 메고 캐리어 손잡이를 꺼냈다.

이제는 말해야 하는 타이밍이 와버렸다.





"저기 혜선 씨."



"네?"



"우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거죠?"





이런 내 질문에 그녀는 후후 웃었다.

그리고 말한다.





"보고 싶어요?"



"네. 비행기 타면 또 보고 싶을 거 같은데."



"어차피 제가 밥도 사드려야 하잖아요.

하루 씨가 만든 의자도 봐야 하고."



"네. 그러니깐 번호 주세요."



"정말 일찍도 물어보신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감출 수 없는 기쁨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다.

진짜.. 행복하다.

어쩌다가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여기요."



"후.. 이걸로 제 여행은 완벽해졌어요.

오면 꼭 밥 사세요."



"알았어요. 메뉴는 꼭 정해놓으시고."

그리고 저 보고 싶으면 사진첩 보세요.

아까 셀카 한 장 찍어놨으니깐."



"네?"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다.

나는 얼른 사진첩을 열어봤고

아까 바닷가에서 찍은 그녀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봤다.





"고마워요 혜선 씨.

비행기에서 잠은 다 잤네요."



"농담은.. 얼른 가세요.

시간 다돼가요."



"네. 갈게요 그럼."





가볍게 손을 흔들고 한발 짝을 내밀었다.

근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 이 말은 꼭 해야겠다.





"혜선 씨."



"왜요!"



"혜선 씨는 진짜 매력적이에요.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진짜 지옥이 되겠네요. 그러니깐 빨리 오세요."



"뭐야아.. 결국 어리광 피울 거면서."





우린 서로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는 한국으로 간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바로 핸드폰을 충전했다.

왜냐하면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봐야 하니깐.





비행기가 이륙할 때쯤 니스엔 밤이 찾아왔다.


점점 멀어지는 니스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여태 본 밤중에 제일 아름다운 밤이었다.













지금 그녀는 무얼 하고 있을까?





벌써부터 혜선 씨가 보고 싶다.






고마운 나의 니스.



고마운 나의 인연.






니스에서 사랑을 가져가는 나는


속으로 이 도시에 안녕을 고했다.





안녕 니스

그리고 안녕 니스의 밤
























P.S

(재즈를 들으며 아주 짧은 영감으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쩌다 3편까지 쓰게됐네요.

마지막이 맹맹해도 이해해주세요ㅎㅎ

제 머릿속에서 저 둘은 아주 예쁜 커플이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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