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그쪽 남자 친구 이야기예요.

by 신하영





- 그쪽 남자 친구 이야기예요.




KakaoTalk_Moim_5P4ZuiPvhMaZFrvyxPzYJEFMsEREs1.jpg 헤어졌다.




나는 온전한 꿈을 꾼걸 지도 모른다. 실상은 전쟁이었지만 사실 고요한 바다 같은 연애를 하는 척했다.

오늘에야 네 번째 헤어짐이 완성됐다. 나는 줄곧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걸 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내가 슬퍼 우는 줄 아는데 모두 틀렸다. 나는 지금 기분이 좋지도 안 좋지도 않은 그저 그런 상태다. 헤어짐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어제보다 바람이 차다. 이대로 집에 가도 괜찮을까? 나는 길을 걸으며 그녀를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음악을 들었다. 집 앞 벤치에서 서둘러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니 긴 샤워를 하고 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폰에선 매번 듣던 노래가 나온다. 랜덤 플레이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피해서 틀어주는 것 같다.


작은 언덕길을 오르고 다시 신호등을 기다린다. 필리핀 쪽에서 태풍이 오고 있다더니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입은 거라곤 셔츠밖에 없어 몸을 웅크리고 이를 갈았다. 외투를 사야겠다. 입을 옷도 없는데. 뭐 어차피 이제 홀로 지낼 테니 데이트 비용으로 쇼핑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다. 이쪽은 산책길이 좋아 밤에도 사람이 많은데 오늘은 바람이 워낙 세 개 불어 다들 집에 있는가 보다. 고요하다. 고요해서 더 걷기 좋았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고 주홍빛 전봇대 밑에 있는 나만의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문다. 라이터는 셔츠 포켓에, 칙 불을 붙이고 깊게 담배를 빨았다.


"후."


추워지는 만큼 연기는 더 뿌옇게 나온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연거푸 숨을 내뱉었다. 지금 귀에 들려오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를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핸드폰에는 몇 개의 메시지가 와있지만 지금은 모든 게 귀찮다. 전부 내일 아침에 답장해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번째 담배를 꺼냈다.


"야."


고개를 돌리니 헤어진 여자 친구가 내 앞에 서있었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이람. 재빨리 이어폰을 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어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다시 만나다니. 이제는 정말 연락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하고 슬프지도 않았는데 여자 친구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니 나는 이상하게도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표정을 숨겨야 한다.


"뭐야?"

"나 할 얘기 남았어."

"말해."

"네가 날 찼다고 생각하지 마."

"너 그 말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미쳤어?"


나는 안다. 여자 친구가 열심히 뛰어온 탓에 볼이 불그스름해졌고 이미 눈가에 약간의 물기가 차있다는 걸.

예뻤다. 참말로 참하고 고와서 절로 몸에 힘이 빠지고 한숨이 쉬어졌다. 하지만 안을 순 없다. 절대 안지도 않고 아까와 같이 단호한 태도로 대화할 것이다. 이번 연애는 분명 지옥이었으니까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그럼 왜 왔는데 말해."

"너 만나는 여자 있어?"

"있으면."

"있으면?"

"그래 있어도 이제 상관없잖아. 아까 다 정리했잖아."

"뭐가 정리된 건데. 너 여자 생겨서 나랑 헤어지는 거면 둘 다 진짜 죽는 거야 알아?"


여자는 무슨. 날 얼마나 속박시켰는지 자기가 제일 잘 알면서.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와서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진지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싫어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조심스럽게 연기를 뱉었다.


"여자는 무슨. sns 댓글 하나만 달려도 노발대발하는 애가 넌데 어떻게 바람을 피냐? CSI도 너랑 연애할 때는 바람 못 필 거다."

"내가 그렇게 잘 못했어?"

"잘잘못 따질 때가 아니야. 우린 그냥 아닌 거야."

"뭐가?"

"그냥 사람대 사람으로서 안 맞는 거야."

"3년을 만났어. 그러면 그냥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무 탈 없었잖아. 그리고 아무런 말도 안 했잖아."

"아무런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야. 그래서 한계가 왔고 더 이상 싸우는 연애는 하기 싫어. 이이상으로 못해 난. 너같이 예민한 애 못 만나. 일상생활이 안될 정도로 스트레스였다고."

"뭐?"

"넌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잖아. 좋다가도 작은 거 하나에 기분 나빠해서 싸움 나게 하잖아. 그래 그게 너라서 나는 그런 너를 3년 동안 만나서 적응이 될 수도 있지 근데. 근데 이제는 안 되겠더라. 내가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난 너랑 싸우는 게 습관이 돼서 참는 것도 못하고 그냥 안 만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야."

"너 말 그따위로 밖에 못해?"


여기 왜 찾아온 건지. 다시 이렇게 싸움을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우리는 텅텅 빈 공원에서 다시 목소리를 올리고 있었다. 지겹다. 분명 날 잡으러 온 거면서도 내가 다시 자기를 잡아주길 바라고 있다. 난 이런 게 싫다. 내가 잡지 않으면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부터 이런 불평등한 만남을 하고 있던 거지?


"이렇게 얘기해야 대화가 제대로 되니까. 그리고 넌 여기까지 와서 결국 또 화내는 거잖아. 뭐 하는 거야 이게 도대체."

"네가 말을 그런 식으로 하잖아!"

"그럼 웃으면서 얘기해야 돼?"

"너 진짜.."

"울지 마. 울어도 나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됐어."


올망 똘망한 눈에서 커다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것이 서러워 보여 나도 눈물이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손가락에 끼어있는 담배를 피우지 못해 그대로 재를 털고 바닥에 버렸다. 옆에선 여자 친구의 농익은 서러움이 스멀스멀 들려오고 있었다.


"나 잡으러 온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면 왜 온 건데. 내가 바람 폈다고 생각한 것부터 이상해. 아니 그렇게 헤어져놓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여태 헤어지면서 네가 온건 처음이니까."

"그래 맞아."

"응"

"하.. 진짜."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단호히 얘기하는 내가 분명 미울 테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일 테니. 하지만 3번을 잡은 나로선 어쩌면 조금 통쾌했을지 모른다. 여자 친구의 집 앞에서 사정사정을 하고 울기도 하고 소리도 지른 게 바로 나라서 충분히 여자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가엽게 여기는 건 아니다. 단지 생각나는 건 여태 자기를 잡았던 남자 친구의 마음을 이제야 깨닫고 미안하다는 소리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뿐. 물론 터무니 일인 건 잘 알고 있다.


"잡으러 온 거면 얘기해. 이상한 얘기 해서 또 언성 높이지 말자. 자존심도 세우지 마 여기까지 온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말했잖아. 잘잘못이 아니라고."

"어쨌든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그렇다고 하면 인정할 거야?"

"응."

"그래 맞아. 너 때문이야."

"알겠어."

"응?"


알겠어. 알겠어 라고 대답했다. 나는 눈물을 닦는 여자 친구를 보며 다시 되물었다.


"너 때문인 거 인정한다고?"

"그래."


그리곤 옆에 있는 벤치로가 털썩 앉아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 앉아 말을 이었다.


"나 정말 너랑 헤어지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고 온 거야.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온진 모르겠는데 잘못했다는 걸 인정했으면 고칠 의향도 있다는 걸로 봐도 돼?"

"나 후회돼."

"뭐가?"

"그냥 지난날이."

눈물이 흘려 콧방울에 맺혀있었다. 나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아 가만히 여자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집에 갔을 때 그렇게 잡던 애가 언제부터는 그냥 날 보냈어. 그때는 그게 나았지. 나는 일단 혼자 생각해야 하는 아니까. 근데 헤어지자 하고 네가 가는데 헤어지기 싫은데 잡지도 못하고 가는 것만 바라보는 내가 예전에 네 모습인 거야. 그래서 뛰어왔어. 너무 미안해서. 이런 기분이었는지 알았으면 나도 안 그랬을 텐데..."


딱 30초다.

내가 다시 여자 친구의 손을 잡게 한 시간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자존심이 세서 또 이상한 말을 해버렸어, 미안해. 그러니까 헤어지는 건 없던 일로 해."

"응."

"정말?"

"그래."


물러보이겠지만 다시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연애라는 게 그렇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감정에 헤어질 수 없는 게 말이다. 이따금씩 또 싸우고 이 아이가 바뀌지 않아 다시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자기 잘못을 내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직접 노력한다고 했으니 믿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도 노력해야 한다. 서로 마주 보고 시간에 의해 낡아진 마음의 부품들을 다시 조립해나가다 보면 우리도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어여쁜 여자가 품에 안겨서 운다는 게 새삼 슬펐다. 그리고 여자 친구의 기분만 생각하느라 일찍이 말하지 못한 나도 참 바보였다.

말하자. 언제든 들어줄 수 있는 게 내 여자 친구니까. 어쩌면 나는 아직 너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걸 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너무 좋은 걸. 미안해. 그리고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p.s

항상 말하세요.

대화는 전쟁이든 사랑이든. 모든 걸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는 현명한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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